내 잔은
비워도 다시 차고
내가 잠든 동안에도
잔은 차 있다.
자정이 넘어
포장마차에서 마신
25도의 소주로 차 있다.
그것은
아짓껏 가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의 사진 앞에서
낙수물처럼
속으로 흘렸던
25도의 눈물이다.
그것은
내꿈의 샘을
마구 휘젓는
25도의 아픔이다.
25도의 바램이다.
코로나19가 꽤나 끈질기다. 그럼에도 ‘집콕’만 할 수는 없어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주변까지 친구랑 다녀왔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42번 국도를 타고 충북 제천을 지나 박달재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웠다. 겹겹이 푸른 산(靑山)이 보였다. 이윽고 영월서 또 멈췄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섬을 감싸는 파아란 강물(湖水)에는 놀잇배(船遊)가 보였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햐! 술맛이 나는 기막힌 풍경이었다. 아쉽게도 운전을 해야 해서 생수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靑山可以當藥 (청산가이당약)
湖水可以健脾 (호수가이건비)
“푸른 산은 약 대신 쓸 수 있고 강물은 오장을 튼튼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當’이란 한자는 ‘마땅할 당’으로 읽는데, ‘비기다’ 또는 ‘필적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자라 비(脾)는 ‘비장’을 말하는데, 오장육부에 속하니 어쨌든 산을 슥~ 쳐다보는 것만으로 약값과 비기고, 강을 흘깃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유익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내게는 코로나19를 예방하는 처방전이 되었다.
앞에 소개한 열 두 글자의 한자는 정조대왕 통치 시절에 대제학을 지낸 남유용처럼, 정조대왕의 아들 순조 임금 때 그 아버지처럼 대제학에 오른 아들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남긴 글이다. 왕과 신하. 이씨와 남씨 부자, 2대의 걸친 인연이 퍽 예사롭지 않다. 그리 보인다. 알고 보면 남공철의 장수 비결은 매일 같이 청산을 보고, 호숫가를 걷는 그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 경상남도. 서울특별시 부럽지 않은 ‘부산’을 빼면 그래도 ‘마창진’이 제일 큰 지역에 속한다. 마산·창원·진해가 그렇다. 이 도시들에는 술을 무척 사랑한 시인 셋이 전설처럼 회자되어 유명하다. 마산의 이선관, 창원의 황선하, 진해의 방창갑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에서도 나는 황선하(黃善河, 1931~2001)의 시를 특히 좋아한다. 광교에 사는 친구 딸 이름 ‘이슬’이 들어간 ‘이슬처럼’이란 시는 생전에 시인이 펴낸 유일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는 말해선 안 되고 보여주어야 한다.”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안대회(安大會, 1961~ )의 말이다. 안대회 교수가 쓴 <궁극의 시학-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문학동네, 2013)에 나온다. 시가 그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무게감과 설득력이 실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황선하의 시 ‘25도’는 매우 충실하다. 시가 그림으로 오롯이 그려져서다.
25°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가리킨다. 소주 도수의 국내 변천사는 25°→20°→17°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소주는 16.9°까지 내려가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승자가 되기 위해 ‘순한 소주’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브랜드 네이밍, ‘참이슬’, ‘처음처럼’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잘 지은 이름이다. 둘 다 황 시인의 시 ‘이슬처럼’의 어원(語源)에서 갈라진 것처럼 내 눈에는 보인다. 아무튼 ‘이슬’은 입술 모양이 벌어지고, ‘처럼’은 입이 닫힌다는 서로 다른 점이 있긴 있다. 이를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내노라 하는 주당들은 술집에 가면 알아서 ‘이슬 주세요’ 하거나, 아니면 ‘처~’만 손님이 외쳐도 사장이나 종업원이 다가와 정확히 원하는 소주를 내놓는다. 이것이 한때 참! 신기했다.
내 잔은
언제나 차 있다.
비워도 다시 차고
비워도 다시 찬다.
내가 잠든 동안에도
잔은 차 있다.
여기까지 시를 읽다가 보면 반복해서 생각나는 그림 한 점이 보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마르크 브뤼서(Mark Bruse, 1937~ )의 작품 <산이 꿈꾸는 동안>은 그래서 내게는 <25°>로 제목이 잘못 입력이 되곤 했다.
언뜻 그림만 먼저 보면 동양인이 그린 것으로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런 까닭에는 그림 왼쪽 하단에 낙관 모양의 영어 이름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그림의 오른쪽 상단으로 화제시(畫題詩)를 만약 배치한다면 황선하 시인의 <25도>가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나의 해찰이다. 화제가 썩 내키지 않아 해본 그냥 넋두리이다. 오지랖이오니 네덜란드 화가시여, 부디 용서하시라.
남쪽의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북쪽의 김정은 최고지도자 부부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약 22개월이 지나지 않는 시점에서 평화의 분위기는 온데 없이 지금은 사라져 안타까웠다. 연일 뉴스에서 남북이 시끄럽다. 긴장 국면이다. 아, 어찌 이럴 수가….
아짓껏 가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의 사진 앞에서
낙수물처럼
속으로 흘렸던
25도의 눈물이다.
그것은
내꿈의 샘을
마구 휘젓는
25도의 아픔이다.
25도의 바램이다.
적어도 내 나이로 60줄이 오면, 나 또한 “백두산 천지의 사진 앞”에 친구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어느 날엔가 서 있으리라 꿈을 꾸며 상상을 해본 적이 여러 번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단’이라는 아픔 앞에서 “아짓껏 가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이었던가?
황선하 시인은 지금 내 나이(57)쯤에 <25°>를 썼다. 시집에 발표했다. 이후에 혹 백두산을 직접 답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낙수물처럼/ 속으로 흘렸던/ 25도의 눈물이” 메마르지 않았을 것임엔 틀림없었으리라, 그저 짐작만 할뿐이다. 황선하의 시는 대체로 ‘성질이 맑고 깨끗한 소주 맛’을 닮았다. 그야말로 ‘충담(沖淡)’의 시적 풍경을 지녔다.
노년에 이르러 시인은 간암의 병력을 가졌다.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줄곧 창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이후 살아온 집 앞, 용지못(龍池湖水)을 그는 매일 같이 찾았다. 온종일 산책했다고 그런다. 용지호수와 관련해 쓴 시들은 그의 유고시집 <용지못에서>(도서출판 경남, 2004)에 다수 보인다. 간암에도 그나마 버틴 체력의 비결에는 남공철의 장수건강 비법인 ‘호수가이건비(湖水可以健脾)’가 한 몫을 해냈지 싶다. 그게 연작시 <목숨>에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황선하 시인의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다가 <25°> 시화(詩畵)를 발견했다. 후배 오하룡 시인이 찾아냈다고 한다. 1987년에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손수 쓴 시에서도 역시 마르크 브뤼서의 그림 같이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술잔이 차지하고 있다.
2년에 한 번 꼴로 참석하는 초등학교 동창회날이었던가. 내가 2부 사회를 보았다. 한 친구가 중간에 나와서 불렀던 가수 남진의 ‘나야 나’는 퍽 감동적이었다. 나름의 ‘멋’이 있었다. 그 이후로 노래방에 가게 되면 어쩌다 노래집에서 찾아 부른다. 그런데 영 맛이 안 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술’이 빠진 게 문제였다. 한 잔은 걸치고서 노래해야만 했다. 그러질 못했다. 제 아무리 용 써도 안 되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잘 난 친구의 지적은 그랬다.
바람이 분다 길가에 목롯집
그냥 가긴 서운하잖아
(중략)
아자
내가 뭐 어때서 나 건들지마
운명아 비켜라
이 몸께서 행차 하신다
(이하 생략)
언젠가 창원에 가서 내가 용지호수 한 벤치에 앉아서 시인을 생각하며 소주 한 잔 마시고 저 노래 <나야 나>를 꼭 부를 것이다. 이 노래가 일찍이 나왔더라면 황선하 시인은 참으로 멋지게 불렀을 것이다. (느낌 아니까).
그거 아시는가? 여자의 입장에서 사내 또는 남편을 뜻하는 우리말이 ‘남진’인 것을. ‘계집’ 소리를 차마 듣기 싫어하는 여자들이여,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남자를 향하여 ‘남진’이라고 크게 외치시라. (뭣도 모르고 좋아라고 웃을 남자들 좀 많을 것이다)
◆ 참고문헌
황선하 <이슬처럼> (창비, 1988)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효형출판, 1998)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생각의나무, 2006)
이종묵 <돌아앉으면 생각이 바뀐다> (종이와나무, 2016)
안대회 <궁극의 시학-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문학동네, 2013)
박남일 <우리말 풀이사전> (서해문집, 2004)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