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빗자루 / 박남준
세상의 묵은 때를 적셔주려고
초롱초롱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시인 박남준(朴南濬, 1957년 ~ )은 재주 많고 노래도 잘하는 미남자이다. 법적(?)으로 총각이다. 시인은 경남 하동 지리산 악양(동매마을)에 정을 붙이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집은 단출하다. 지붕은 하늘을 닮아서 푸르다. 그런가 하면 붉은 빛깔이 은근한 질그릇 질감의 황토색 벽은 멀찌감치 봐도 초롱초롱 시인의 눈동자처럼 맑아 환한 구석이 있다. 그렇듯 보인다. 해서 난 ‘적막(赤幕-붉은 오두막집)’, 이 두 글자로 집 이름을 별칭하고 싶었다.
앞의 시는 다섯 번째 시집 <적막>(창비, 2005년)에 4부에 등장한다. 시인의 말이 퍽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다음과 같다.
사십대에 내는 마지막 시집이다. 불혹의 얼굴이 궁금하던 날이 있었는데 어느새 반백의 머리칼, 오십을 지척에 두고 있다. 오십이 되면 내 시가 좀 변해지기는 할 것인가.
어둡고 습한 모악산 외딴집에서 쓴 시들과 이곳 따뜻하고 환한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를 와서 씌어진 시들을 보태고 작년 생명평화 탁발순례 길에 쓴 시편 중 몇편을 덧붙여 엮었다.
시를 찾아, 시에 갇혀, 결국 여기까지 왔다.
2005년 겨울 지리산 자락 악양에서
“시를 찾아, 시에 갇혀, 결국 여기까지 왔다”라는 말에서 시인이 나는,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수도 장안을 떠나 시골의 녹문산(鹿門山)에 묻혀 살면서 시 짓는 일에 부지런함을 오로지 떨었음을 새삼 기억하게 된다. 어쩌면 전원생활을 호젓이 낭만적으로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맘껏 사랑했다, 라는 점에서 그런 사치야말로 우리가 배우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 유명한 서점에 걸린 詩! 광화문 글판
2014년 봄. 박남준의 시 <깨끗한 빗자루>가 광화문 글판을 독차지한 적이 있다. 시 제목처럼 깨끗한 빗자루를 들어 봄비에 세상의 온갖 사악한 묵은 때를 말끔히 씻겨주는 메시지로서 시를 대중에게 선물한 바 있다. 다음이 그 실체이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시의 전문을 열일곱 글자로 맞춰야 하는 하이쿠(5·7·5의 17자로만 구성된 짧은 시를 말함)처럼 압축해서 켈리로 예쁘게 흘려 쓴 시와 무지개 우산 그림의 디자인은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엮은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교보문고, 2020년)에 보인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든 책을 통해서 실체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봄. 다시 박남준의 시를 읽자니, 예전과 달리 그림이 하나, 자동 떠올랐다. 인상파 서양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가 그린 ‘파리의 거리, 비(Paris Street, Rainy Day)’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名畵)의 구조를 잘 읽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술 사학자 아키타 마사코(秋田麻早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설명은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도 큰 것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법은 원근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려지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가까이에 있으면 더 클 것이다”라고 무의식적으로 보정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대단한 원근감을 사용하여 균형을 취한 화가로서 유명한 인물이 드가의 동료였던 카유보트(1848~1894)입니다. 그는 화면 좌우에 근경과 원경을 나누어, 깊이감의 대조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뛰어났습니다. 흔히 “파격적인 구조”라고들 하는데, 원근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오른편 앞쪽에 우산을 든 사람들이 클로즈업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에 비해서 왼편에는 멀찍이 행인들이 보입니다. 먼 곳의 사람은 작아도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아키타 마사코, 이연식 옮김 <그림을 보는 기술>, 162~163쪽 참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명화를 자세히 보자. 보는 것에만 멍하니 머물지 말고 자세히 원근감에 천착하여 구석구석 관찰해 볼 일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일까?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크게 보이는 중년의 남녀 커플이 그 주인공이다. 커플은 이른바 ‘파리지앵(Parisien)’이다. 즉 프랑스의 수도인 도시 ‘파리에 사는 사람’을 말함이다. 잘 어울리는 남녀가 한 우산을 같이 쓰고 파리 시내를 휘젓고 있는 모습을 그림은 담았다. 이와 관련, 재미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림 속의 저 가벼우면서도 커다랗게 보이는 큰 우산이 1851년 처음 개발이 되었단다. 인기가 좋아서 그야말로 시중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판매가 잘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비 올 때의 도시 파리는 그림 속에서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말끔하게 보인다. 바로 이것이다. 화가의 시선처럼 봄비를 맞이한 시인의 눈빛에 빗줄기 하나가 모두 쓰레기를 치우는 ‘빗자루’로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래서 봄비가 내리면 세상이, 거리가 금세 환해지고 봄비 자신은 하나의 빗자루로 시인의 눈에는 감지가 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도 봄비가 반갑게 내렸다. 양평 수수카페, 산책로를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오래 걸었다. 걷다가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내가 노년에 이르러 꼭 살고 싶은 ‘적막’의 단출한 단독주택을 우연히 발견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친구에게 부탁했다. 적막이란 제목을 달아 켈리로 박남준의 시와 그림을 그려보라고. 일주일 못 되었는데, 친구에게서 카톡 편으로 그 회신이 왔다. 여기에 그대로 소개한다.
개여울의 그 숲엔 노래하는 시인이 산다
내가 처음 박남준 시인을 알게 된 데엔 시인 최영미의 공이 크다. 박남준 시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말미에 실린 최영미가 쓴 발문 글 덕분이었다. 찾아보니 발문의 제목이 ‘눈물의 빛’이다. 그 재미있는 부분을 뒤적여 여기에 옮겨 소개한다.
내가 박남준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1993년)쯤 전주의 어느 허름한 술집, 냄새나는 화장실 안에서였다. 민족문화작가회의 지역순회 시 낭송회를 마친 뒤 떠들썩한 뒤풀이 자리였던 거로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위 문단이라는 데에 처음 고개를 내밀고 늦깎이 특유의 매력으로 심심하면 아무 자리나 기웃기웃할 때였다. 어디를 가도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았고, 그래서 그 명성 뒤에 숨어서 모처럼 몸과 마음을 다 풀어놓고 개기던, 정말로 대책없는 시절이었다. 박남준도 그날 밤 몇번인가 자리를 옮기며 헤쳤다 모이곤 하던 술상 너머로 처음 대면했었다.
언뜻 인사한 뒤 언뜻 잊어버린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던 그가 내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그 요상한 노랫가락 때문이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문득 조용해지고 모두의 시선이 노래의 진원지에 가 꽂혔다. 거기 그가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색시처럼 곱게 생긴 동안의 남자가 한복 저고리의 차림으로 꼿꼿이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피를 토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순간 나는 그에게, 그의 노래에 반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는 그처럼 몸의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처절한, 오간장을 한데 녹여 무쳐버릴 것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이건 거의 예술이로군, 감탄한 동시에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아, 이 인간이 여자깨나 흘렸겠군. 순진한 사람 많아 잡았겠군.’ (중략) 그의 시는 노래만큼 강렬하지도 좋지도 않았다. (중략) 너무 여리고 감상적이라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책, 89~90쪽 참조)
이때부터다. 최영미가 반했다는 <개여울>이란 시와 노래를 나는 따라서 흥얼흥얼 부르기 시작했을 터이다. 심지어는 등단 시인이자 현직 기자인 한 선배를 꼬드겨 가수 겸 서양화가, 교수이기도 한 정미조 선생을 직접 보러 방배동 작업실에 따라간 적도 있었다. 작업실에서 차도 얻어 마셨다. 그뿐인가. 직접 CD에 친필 싸인도 받았다. 그러니까 어언 10여 년 된 일이다. 아, 옛날이여!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다시 최영미 이야기로 돌아가자. 앞의 발문만을 읽으면 박남준 시를 함부로 폄하할 우려가 있어 보태야 할 나머지 보따리를 풀고자 한다. 이 역시 최영미 시인의 발문에서 인용함을 고백하는 바이다.
올 추석(2003년) 무렵이었던가, 아는 선배 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내게 다짜고짜로 박남준이라는 시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기가 막힌 시가 실렸다는 거였다. 나는 전화로 좀 읽어달라고 청했다.
나 오래 침엽의 숲에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감각을 곧두세운 숲의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전해오고는 했지.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서 가슴
어디께의 빈 무덤으로 잊지 않았는데
숲을 헤매는 동안 지상의 슬픈 언어들과 함께 잔인한
비밀은 늘어만 갔지. 우울한 시간이 일상을 차지했고 빛
으로 나아갔던 옛날을 스스로 가두었으므로 이끼들은,
숨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포자의 눈물 같은 습막을 두르고 숲의 어둠을 떠다니고
있다.
― 박남준 시,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전문
나는 깜짝 놀랐다. 질투를 느낄 만큼 잘 쓴, 훔치고 싶은 시였다. 박남준이, 그가 언제 이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던가. 나는 당장 서점에 나가서 《창작과 비평》가을호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 박남준의 이름으로 실린 세 편의 시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짚어가며 음미했다. (같은 책, 91~92쪽 참조)
아무튼 1993년 봄. 그때 그 시절의 박남준 시인은 서른일곱의 나이였고, 최영미 시인은 서른셋의 꽃다운 젊은 나이였다.
2021년 봄. 그 유명한 시인 두 사람은 각자 열심히 시에 갇혀, 살고 있다. 김용택 시인 어머니가 그토록 예쁘다고 말했다는 최영미는 올해로 환갑이 되었고, 동안의 소년 같은 남자였던 박남준은 백발의 반짝이는 예순다섯이 되었다. 가장 어린 나 또한 나이가 벌써 쉰여덟이 되었다.
길 위를 걷는 화가 ‘폴 세잔’
숲속에 적막을 짓는 시인 ‘박남준’
박남준의 시 한 편을 더 낭송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표제시 <적막>이 그것이다.
적막 / 박남준
눈 덮인 숲에 있었다
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주 주저앉는다
대체로 눈에 쌓인 겨울 속에서는
땅을 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어쩌자고 나는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았을까
오늘도 안으로 밖으로 잠긴 마음이 작은 창에 머문다
딱새 한 마리가 긴 무료를 뚫고 기웃거렸으며
한쪽 발목이 잘린 고양이가 눈을 마주치며 뒤돌아갔다
한쪽으로만 발자국을 찍으며 나 또한 어느 눈길 속을 떠돈다
흰빛에 갇힌 것들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왔으나
들끓는 길 밖에 몸을 부린 지 오래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
이 시를 가만가만 낭송하다 보면 ‘문’과 ‘창’을 발음하면서 예민해진다. 특히 “어쩌자고 나는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았을까”라는 구절과 만나면 연신 내 무릎을 치면서 실실 웃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라.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문창과 출신이 많지 않던가. 그렇다. 세상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세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는 것조차도 무관심해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박남준 시인이 지리산 숲속에 ‘적막’을 짓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려는 열정을 지녔음을 목격한다. 예컨대 “흰빛에 갇힌 것들/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왔으나/ 들끓는 길 밖에 몸을 부린 지 오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척간두진일보의 심정이 되어서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고자 하는 것이 가령 그러하다. 이러매 절망에 함몰되지 않고 마음 한편(이곳과 저곳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것들)에 열망으로 길이 되는, 다리를 설치하고자 애쓰는 것으로 시가 읽혀졌다.
다시 말해서 박남준의 시에 숨결에는 위대한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감각적이고 고풍적인 붓질이 언뜻 스친다. 시인의 집으로 가는 산기슭 언덕의 길에서 언뜻 본 듯한 ‘생트빅투아르 산’이 보인다. 이뿐만 아니다. ‘맹시 다리’와 비슷한 다리를 건너는 시인이 상상되며 그려진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엄미정 작가는 수시로 그림 여행을 떠나는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엄미정 작가가 최근 펴낸 <후회 없이 그림 여행>(모요사, 2021년)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몹시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내가 세잔을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그림은 따로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화폭이 온통 초록으로 아우성치는 <맹시 다리>였다. 내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잔의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마치 일순간 멈춘 듯 숨죽이고,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둥근 아치와 직선의 나무다리, 쭉쭉 뻗은 초록의 나무들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와 햇빛을 받은 나뭇잎이 까르르 웃는 것 같았다. (같은 책, 341쪽 참조)
엄미정 작가는 세잔의 <맹시 다리>를 직접 관람하고는 “흔히 마티스를 ‘색채의 마술사’라고 하지만 세잔의 색도 그에 못지 않았다. 직접 본 세잔의 색은 세련되고 고상했다”라고 책에 적었다.
박남준의 <깨끗한 빗자루>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무상한 붓질과 닮았다면, <적막>이란 시는 폴 세잔의 색처럼 세련되고 고상한 느낌이 전해진다. 여하튼 나는, 경기도 양평이나 가평 어느 산골짝에 붉은 벽돌집 ‘적막’을 짓거나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환갑을 전후로 후회 없는 프랑스 파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기 전에, 우선은 박남준 시인이 산다는 지리산 악양 땅에 올 여름엔 기어코 놀러가고자 한다. 이전처럼 혼자 쓸쓸히 떠나진 않을 것이다. 내게도 여행 친구(여친)가 있어서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굳이 떠나고자 하는 여행의 이유에는 무엇보다 묵고 찌든 속세의 때를 벗겨내기 위함이다. 벗겨낸다고 또 때가 생겨나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시와 그림은 샤워와 비슷하다. 여전히 미진한 구석이 있다. 그런 까닭에 샤워를 했다고 한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을 통해서 때밀이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남준의 시는 여행가방에 반드시 챙겨야만 하겠지.
◆ 참고문헌
박남준 <적막>, 창비, 2005.
박남준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창비. 1995.(최영미 발문 ‘눈물의 빛’ 참조)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교보문고, 2020.
아키타 마사코, 이연식 옮김 <그림을 보는 기술-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까치, 2020.
엄미정 <후회 없이 그림 여행>, 모요사. 2020.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