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시장이 ‘빅3’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17%), 쿠팡(13%), 이베이코리아(이하 이베이, 12%), 11번가(6%), 롯데온(5%), SSG닷컴(3%), 카카오(2%) 등의 순이었다. 이베이 인수를 놓고 몇 차례 우여곡절 끝에 신세계가 ‘유통 맞수’ 롯데를 제치고 이베이를 품에 안았다. 신세계는 통합 온라인 법인 SSG닷컴을 내세운 이베이 인수를 통해 ‘네이버-신세계(이마트)-쿠팡’ 3강 구도로 판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 3사는 최근 크고 작은 사고로 CEO의 행태와 기업 리스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 네이버 지도(맵) 개발자 A씨가 지난달 직장 내 괴롭힘과 업무상 스트레스가 컸다는 유서를 남긴 채 죽음을 선택했다. 네이버 노조는 “A씨가 2년 이상 무리한 업무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괴로워했지만 회사 경영진은 이를 묵인·방조하고 가해자를 비호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는 “일부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있었고 건전한 조직문화 조성에 대한 리더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을 확인했다”며 “대상자들에게 각각의 징계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번 일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최측근이자 차기 CEO로 꼽혀온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사퇴했다. 최 COO는 사망한 직원을 괴롭힌 의혹을 받는 인물을 주변 직원들의 반대에도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등 최 COO의 다른 법인의 직책은 유지한 채 경영 쇄신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다.
# 이커머스 강자로 떠오른 쿠팡에 최근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17일 덕평물류센터에 불이 난 지 5시간 후 쿠팡은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이 한국에서의 모든 직책을 그만두고 글로벌 사업을 위해 한국 사업을 새로운 CEO에게 넘긴다’는 보도뿐이었다.
쿠팡의 최초 사과문은 새로 임명된 강한승 대표 명의로 사건 발생 38시간 지난 후에 나왔다. 쿠팡을 뉴욕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의 아마존’으로 만들었다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신화적 인물로 떠오른 김범석 의장은 그 후에도 끝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쿠팡은 지난 1년간 배송과 물류업무로 사망한 노동자는 9명에 달했지만, 김 의장은 사과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해외시장 전념을 이유로 국내 쿠팡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것도 2021년부터 시행되는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의혹도 뿌리칠 수 없다.
# 인스타그램 화제의 인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자신이 먹은 가재와 우럭에게도, 죽은 반려견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 남겨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즐겼다. 이베이 인수를 두고 롯데와 막바지 경합이던 15일 새벽에는 수 백 만원대로 예상되는 와인병 사진을 올리며 “우와 6리터, 마지막앤 핥아 마셨음. 과용했어 미안하다. 내가 이 은혜를 꼭 갚으마. appreciate it(고마워)”이라는 글로 취중 정점(?)을 찍었다. 물론 이 글은 몇 시간 후 급히 삭제됐지만….
이마트는 경영합리화란 이름으로 2017년 2곳(노브랜드 전환 포함), 2018년 2곳, 2019년 2곳에 이어 2021년 상반기에만 동광주점과 인천공항점의 문을 닫았다.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개인 SNS에 올린 정 부회장은 최근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제작한 뮤지컬 ‘박정희’를 관람했다.
기업 성과는 주주에 대한 수익뿐 아니라 ESG(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투명하게 달성했는지도 평가돼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국내 기업들도 ‘경영의 성장키워드’로 설정하고 ‘ESG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나름 열심이지만 아직도 ‘무늬만 ESG’가 많다.
20세기의 대표적 지성 칼 포퍼(K. R. Popper)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사회’란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사회이자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 비판을 수용하되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그 반대는 닫힌사회이고 열린 사회를 가로막는 적들일 것이다.
본격 성장기에 들어선 한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물류센터 확충과 배송 서비스 강화, 규모의 경쟁에 몰두하기 앞서 성역없는 ‘열린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최영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ou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