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매출 회복세를 긍정적으로만 보긴 어렵다. 기저효과가 작용한 영향이 큰 데다가, 코로나19 이전 수준 매출(약 2조 250억 원)보다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더믹에 시내면세점들이 줄줄이 백기를 들고 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95%는 외국인의 지갑에서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중국인 보따리상인 따이궁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20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고객은 25만 94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0만 1743명) 대비 89.6% 줄었다.
◇ 코로나19 4차 유행에…'벼랑 끝 버티기'
호텔신라는 올해 1분기 매출(5589억 원)의 25%에 해당하는 1409억 원을 면세점 송객수수료로 썼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벌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 4.3%의 알선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6배가 넘는 알선 수수료를 지급한 셈이다.
국내 면세점 1·2위인 롯데·신라면세점은 지난 2월 임차료가 비싼 공항 1터미널 면세점을 닫았다.
올해 1분기 코로나19 발생 이전 하루 평균 20만 명이던 인천공항 입출객 수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3000여 명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롯데와 신라면세점은 인천공항 1터미널 매장을 운영하며 월 임차료로 각각 193억 원, 280억 원씩 내왔다.
현대백화점 면세점 역시 코로나19로 매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최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집단 감염 사태로 일주일간 문을 닫자,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면세점 역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세계디에프는 지난 17일을 마지막으로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의 영업을 종료했다. 지난 2018년 영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의 철수다.
유신열 신세계디에프 대표는 “강남점 영업 중단은 회사 생존을 위한 사업 재편의 일환이다. 이를 계기로 면세사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는 연간 150억 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또 강남점의 지난해 4분기 일 평균 매출은 명동점의 20% 수준에 불과한 10억 원 안팎에 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 면세점들도 사실상 면세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하나투어의 자회사 에스엠면세점은 경영 악화를 못 견디고 지난해 특허권을 자진 반납했다. 시티면세점도 신촌점 특허권을 반납했고 경복궁면세점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점을 철수했다.
◇면세구입한도 1회당 한국 69만원인데 중국 1769만원
면세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규제 완화다. 그간 정부는 면세점 특허수수료 감경, 공항 임차료 납부 방식 변경, 무착륙 관광 비행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2019년 대비 38% 감소했다. 중국 하이난만 127% 증가한 50억 달러(5조 7000억 원)를 기록하며 살아남았다.
영국 면세산업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하이난 면세점의 매출 호조로 중국 국영기업 중국면세품그룹(CDFG)은 기존 1위였던 스위스 듀프리, 2·3위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을 제치고 지난해 글로벌 면세점 순위 1위에 등극했다.
또 올해 1~5월 국내 면세점이 거둔 매출은 총 7조 1126억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 9조 6995억 원보다 26.7% 줄었다.
국내 면세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면세업의 위상이 더욱 커질 경우 한국 면세업계의 몰락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생존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내국인 면세 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면세품 전체 구매 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면세 한도는 1회 600달러(약 69만 원)로, 지난 2014년에 상향 조정한 후 7년째 유지되고 있다. 또 면세품 전체 구매 한도는 500달러로 책정돼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하이난 해외 면세 쇼핑 한도를 1인당 10만 위안(약 1769만 원)으로 대폭 상향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면세상품 품목은 38개에서 45개로 늘렸고, 8000위안(약 142만 원)이던 개별 상품 면세 한도액도 없앴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한 달 하이난 면세점을 찾은 소비자는 총 28만 1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다. 1인당 구매액도 같은 기간 3544위안(약 63만 원)에서 7896위안(약 14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중국 보따리상을 잡기 위한 업계 차원의 자구책도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국인 해외직구 거래액은 2016년 1조 9079억 원에서 2017년 2조 2435억 원, 2018년 2조 9717억 원, 2019년 3조 6360억 원, 2020년 4조 1094억 원 등으로 급성장해왔다. 업계는 보복 소비 영향으로 올해는 해외직구 규모가 전년 대비 약 1.5배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직구가 활성화됨에 따라 국내 면세점의 일부 상품 가격이 인터넷보다 비싼 경우가 생기자, 중국 보따리상 유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보따리상을 대상으로 구매액에 따른 할인, 포인트 적립, 온‧오프라인 프로모션 활성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6월 중순 해외점의 물류 인프라와 상품 소싱 역량을 발판 삼아 해외 직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후 LDF BUY를 통해 닥터내츄럴, 뉴트라라이프, 스프링리프 등 호주 유명 건강식품 브랜드 13곳의 200여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 셀러별로 소싱이 이뤄지는 타 해외 직구 사이트와는 다르게 LDF BUY는 롯데면세점 호주법인이 주체가 돼 상품 소싱을 직접 진행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면세업계에 주고 있는 각종 혜택은 오는 연말까지만 적용된다. 하반기에 새로운 살길이 나오지 않으면 면세업계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손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injizz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