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는 지난 2018년 설립된 블록체인 업체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 자산이다. 정확한 명칭은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이와 연동된 '테라(LUNA)'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안정성을 위해 특정 자산과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암호화폐를 일컫는다.
폭락 사태는 지난 9일 UST 거래가가 70센트대로 떨어진 채 시간이 끌리며 본격화됐다. UST가 목표 가치를 방어하지 못하자 테라(LUNA) 투자자들은 패닉셀(공황 매도)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시 UST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 현상이 일어났다.
암호화폐의 대표주자 비트코인은 테라 폭락 사태 직전인 9일까지 약 4300만원대에 거래됐으나 지난 12일 최저 3428만원으로 급락했다. 24일 기준 3800만원대에 거래돼 최저가 기준 21.8%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테라 폭락 사태는 가상자산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라고 평하기도 했다.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두달 전인 지난 3월, 테라폼랩스는 UST를 예치한 이용자에게 연 20%에 가까운 수익을 보장하는 '앵커 프로토콜' 서비스를 공식 발표했다. 이더리움(ETH)의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은 이를 두고 "폰지 사기에 가까운 실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테라폼랩스 역시 이번 사건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코인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에 따르면 테라폼랩스의 마크 골디치 고문 등 법무팀 3명이 이달 들어 회사를 떠났다. 업계 일각에선 테라폼랩스 싱가포르 본사가 폐쇄됐으며 대표이사의 행방 또한 알 수 없다는 잠적설까지 제기됐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지난 17일 하드포크(기능 수정을 거쳐 블록체인을 재생산함) 방식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 '테라 2.0'을 구축하는 회생안을 내놓았다. 23일에는 SNS를 통해 토큰 소각 관련 게시물을 게재하며 '테라' 회생을 위한 의지를 연달아 드러냈다.
테라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비관적이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대표는 "하드포크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고 회생안은 테라폼랩스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히테시 말비야 IBC 캐피탈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당분간 테라를 잊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상자산 전문지 코인데스크는 테라폼랩스가 앞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베이시스캐시(BAC)' 프로젝트에 관여했으나 해당 프로젝트 또한 가치 방어 실패로 무너졌다며 "UST 가치 하락 등은 테라폼랩스가 처음 범한 실책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BAC는 지난 2020년 출범한 달러 가격 연동 스테이블 코인으로 페깅을 위해 베이시스 셰어 등의 토큰을 제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게이트·유니스왑 등에서 거래 가능하나 지난해 1월 1달러 선이 붕괴된 데 이어 5월부터 10센트선마저 무너졌고 이달 들어 0.7센트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테라폼랩스 전직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코인데스크와 인터뷰에서 "BAC 프로젝트의 익명 공동 설립자 '릭 산체스'는 권도형 대표"라며 "테라 초창기 멤버 다수가 '시범 프로젝트' 명목으로 BAC 개발에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모리스는 "테라 사태는 불가능한 약속을 가능한 것이라고 자신마저 속여온 결과가 만천하에 드러난 사례"라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블록체인 업계의 엘리자베스 홈즈"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2004년 19세의 나이에 메디테크기업 '테라노스'를 창립, 2014년 한 방울에 가까운 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인물이다. 그러나 1년만에 해당 발표가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실리콘밸리 최고의 사기꾼으로 불릴 정도로 몰락했고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모리스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자신의 기술이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만 가진 채 실패를 거울로 삼는 대신 무의미한 결함으로 일축하고 가리는데 급급했던 인물"이라며 "펀더멘탈 자체가 의심스러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 투자자와 업계인들은 진중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