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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자신이 불붙인 '메타버스 패권전쟁'에서 궁지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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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자신이 불붙인 '메타버스 패권전쟁'에서 궁지 몰려

"로블록스는 메타버스" 주장 동조한 애플, 2년 후 "메타버스는 허구"
마이크로소프트·메타, '메타버스 연합' 결성 후 애플 향해 '총 공세'

팀 쿡 애플 대표. 사진=AP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팀 쿡 애플 대표. 사진=AP통신·뉴시스
'메타버스' 유행의 시발점을 제시했던 애플이 2년 만에 "VR(가상현실)과 메타버스는 구분해야 한다"며 '메타버스 허상론'을 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 플랫폼스(메타)를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연합'의 공세에 맞서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메타버스 유행의 시작은 지난해 3월, 게임사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는 상장 직후 40조원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이들이 내세운 핵심 비전인 '메타버스'는 IT업계 최대 유행어로 떠올랐다.
'로블록스'는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이 즐기는 온라인 샌드박스 장르 게임인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 MS 산하 모장 스튜디오가 개발한 '마인크래프트'와 더불어 이른바 '3대 메타버스'로 불린다.

지난 2006년 출시 후 15년 가까이 서비스해 오던 이 게임이 실질적으로 스스로를 '메타버스'로 정의한 것은 불과 2020년 하반기부터다. 그 이면에는 다름 아닌 애플과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즈의 법정 공방이 있다.
에픽게임즈는 지난 2018년부터 자체 유통망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운영해왔다. 그들은 포트나이트의 모바일 버전에도 자체 스토어 기능을 적용, 30%나 떼이는 인앱 결제 수수료를 아끼고 싶었다. 그러나 2020년 8월 이를 실제로 적용하자, 애플은 구글과 함께 '스토어 규제 위반'을 이유로 포트나이트의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자 에픽게임즈는 즉각 두 회사를 '앱스토어 시장 독과점'을 이유로 미국 법원에 고소했다. 애플이 즉각 반소하며 법정 공방이 시작됐고, 에픽게임즈는 "앱 내 결제 구조가 있는 로블록스는 왜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애플은 "포트나이트와 달리 로블록스는 게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메타버스'라고 규정지었다. 서비스 내의 '게임'이란 표현을 '경험(Experience)'로, '이용자(Player)'를 '사람(People)'로 바꾸는 등 '게임 지우기' 정책이 이어졌다.

'로블록스' 이미지. 사진=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미지 확대보기
'로블록스' 이미지. 사진=로블록스 코퍼레이션

양사의 법정 공방이 한창 일어나던 지난해, 또 다른 빅테크 마이크로소프트(MS)와 페이스북이 돌연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특히 페이스북은 아예 자신들의 이름을 '메타 플랫폼스(메타)'로 바꿨다.

MS와 메타는 당초 메타버스 시장의 '경쟁 상대'로 꼽혔고, 많은 투자 정보사들은 두 회사를 비교하며 메타버스 시장을 다뤘다. MS는 클라우드 기술과 팀즈·오피스 등 비즈니스 솔루션, 엑스박스(Xbox) 등 콘텐츠 분야, 메타는 소셜미디어 이용자층과 VR(가상현실) 하드웨어 등의 면에서 강점이 있는 회사로 분석됐다.

그러나 올 6월 들어 두 회사는 앞서 언급한 에픽게임즈에 엔비디아·퀄컴 등과 손잡고 '메타버스 표준 포럼'을 제정했다. 최근 공식 파트너십까지 발표하며 이른바 '메타버스 연합'을 창설했다.

메타버스 연합의 '주적'은 애플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대표는 MS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한 지난 12일 "애플과 같은 폐쇄적 플랫폼들이 과거 인터넷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우리는 개방된 생태계를 구성해 차세대 인터넷인 메타버스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며 애플에 '적폐' 딱지를 붙였다.

MS는 메타와 같은 '직접적 공세'에 나서진 않았으나, 영국 경쟁시장국에 제출한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관련 보고서에 "모바일 게임 IP를 바탕으로 모바일 스토어 시장에 진출, 애플·구글과 경쟁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왼쪽)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플랫폼스 대표. 사진=AP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왼쪽)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플랫폼스 대표. 사진=AP통신·뉴시스

두 회사가 애플에 대한 공세에 나선 것은 단순히 '빅테크 라이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메타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 즉 '콘텐츠' 사업자다. 인앱 결제 수수료나 광고 등의 문제로 플랫폼 사업자인 애플과 꾸준히 충돌해온 만큼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메타가 보유한 세계 최대 VR 하드웨어 플랫폼 오큘러스의 존재 역시 중요한 경쟁 요소다. 애플은 지난 몇 해 동안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하드웨어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MS의 경우, 애플·에픽게임즈 법정 공방에 참고인 형태로 함께해 애플에게 공격을 받은 전례가 있다. 애플은 30% 결제 수수료 정책에 대해 해명하며 MS의 엑스박스(Xbox) 플랫폼 거래 수수료도 30%임을 지적했다.

이에 MS는 Xbox 콘솔 기기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회계자료를 공개하며 "기기 보급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만큼 수수료를 매겼으므로 애플 앱스토어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법정 공방 중 "에픽게임즈는 MS가 보낸 스토킹 호스"라고 주장했다. 스토킹 호스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타던 말을 미끼로 보내는 사냥 수법을 일컫는다. 즉 "이번 소송전의 배후에 MS가 있다"고 몰아붙인 것이다.

MS가 앱 스토어 진출에 관해 구글을 함께 거론한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에픽게임즈에 대한 반소장에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가 법정 공방에 앞서 필 스펜서 MS 게임사업부 대표에게 계획에 대한 언질을 줬다"는 내용을 명기했다.

'마인크래프트' 이미지. 사진=마이크로소프트이미지 확대보기
'마인크래프트' 이미지.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에픽게임즈와 메타, MS로 이어지는 '메타버스 연합'과의 대결에 애플은 애를 먹을 전망이다. 팀 쿡 애플 대표는 앞서 언급했던 VR·AR 시장 진출과 메타와의 경쟁을 의식한 듯 지난달 말 "VR은 용도를 특정할 수 있는 기술임에 틀림 없으나 메타버스는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용어인지 의문"이라며 '메타버스 허상론'을 내놓았다.

'메타버스 연합'이 더욱 덩치를 키울 가능성도 적지 않다. 메타와 MS는 IT 컨설턴트사 액센추어와 3자 협력해 B2B 메타버스 솔루션 시장을 개척할 예정이다. 메타는 이와 별개로 미디어 기업 NBC유니버설, 메타버스 표준 포럼에 함께했던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 어도비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IT 시장 분석가 벤 톰슨은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스트라티처리(Stratechery)에서 저커버그 메타 대표에게 "'애플과 iOS가 지배하는 구조를 탈피하자'는 동기가 파트너십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냐"고 물었다.

저커버그 대표는 "우리의 파트너십은 경쟁 중심이 아닌 기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앞서 언급했던 퀄컴과 유럽 스마트안경 제조사 엘릭서룩소티카를 중요한 파트너로 지목하며 "MS만이 우리의 큰 파트너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