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계 안팎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성격'과 관련해 널리 퍼진 속설이 하나 있다.
자신을 디스한 인물에 대해서는 잊지 앉고 나중에 반드시 앙갚음한다는 것. 머스크의 라이벌일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겸 전 CEO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머스크 CEO가 27일(이하 현지시간) 올린 트윗을 통해 게이츠에게 테슬라가 오랜 기간을 준비한 끝에 최근 양산에 들어간 차세대 전기트럭이자 장거리수송용 트럭인 ‘세미트럭’을 시승해볼 것을 권유하고 나섰다.
사정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권유였다. 그러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머스크가 자신을 깎아내린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속설을 어김없이 뒷받침하는 사례로 해석됐다.
◇머스크, 세미트럭 1회 충전 주행거리 과시
27일은 머스크 CEO 입장에서 매우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지난달부터 양산에 들어간 세미트럭이 한번 충전으로 500마일(약 805km)을 주행하는 인상적인 기록을 달성한 사실을 트위터를 통해 자랑한 날이었기 때문.
이는 현재 유통되는 전기차 가운데 주행거리가 가장 길다는 루시드에어와 맞먹는 수준이자 테슬라가 당초 제시한 최대 주행거리 850km에 근접한 수준이다.
게다가 세단이 아니라 트럭으로 이 기록을 달성했을 때 잰 세미트럭의 무게가 머스크의 설명에 따르면 8만1000파운드(약 40t)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스크가 흡족할만한 성과다.
그러나 머스크가 또한가지 기뻐할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히는 게이츠 MS 전 CEO가 세미트럭의 미래에 대해 평가절하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테슬라 마니아로 게이츠의 과거 발언을 잊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사용자가 “세미트럭은 아예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악담했던 게이츠가 이제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자 머스크도 기다렸다는 듯 “원한다면 시승을 해주도록 하겠다”는 답글을 올린 것.
우쭐해진 머스크가 게이츠에게 세미트럭을 타볼 것을 사실상 권한 셈이다.
아울러 테슬라가 SUV형 전기차인 모델Y를 출시한 지 2년이 넘도록 새로운 모델을 내놓지 않았는데 그 공백을 세미트럭이 메워준 것도 머스크 CEO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게이츠 “세미트럭 영원히 출시 안될 수도”
머스크가 세미트럭 시승을 게이츠에게 권한 것은 게이츠의 과거 발언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게이츠는 지난 2020년 9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세미트럭의 문제는 배터리가 지나치게 크고 무겁다는 점”이라면서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에 돌파구가 열린다 해도 전기차는 바퀴 18개가 달린 대형 트럭은 물론 화물선과 항공기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기차를 트럭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아직은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셈이다.
게이츠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장거리 수송용 차량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대안으로 ‘바이오 연료차’를 제시하기도 했다.
CNBC에 따르면 테슬라는 게이츠가 지적한 세미트럭의 배터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차세대 원통형 ‘4680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500kWh 용량의 배터리를 적용해 상당 부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게이츠만 세미트럭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여긴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세미트럭이 드디어 양산단계에 들어간 것이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첫 발표회 이후 무려 5년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양산 일정이 계속 늦춰지면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러다 세미트럭이 아예 출시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