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매체 남화조보(SCMP)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동남부 저장성 지방 정부는 이달 중순 2000억위안(약 37조원) 규모의 메타버스 투자안을 발표했다. 저장성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가상증강현실(VR·AR),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이끌어갈 10명의 산업 리더와 50개의 전문 기업을 배출할 계획이다.
범아시아 법률 컨설팅사 DS&A(Dezan Shira & Associates)에 따르면 저장성은 지난해 11월 '메타버스 산업 발전 심포지엄'을 조직, 관련 연구개발(R&D)에 나섰다. 또 저장성 남서쪽의 광둥성 역시 홍콩·마카오 등과 연계해 IP보호 강화, 인재확보, 사회적 자본 유치 등 다방면으로 메타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각 지방 정부의 이러한 행보와 달리 중국 정부의 태도는 불분명하다. 올 7월만해도 중국 국영신문 재일재경이 "중국 메타버스 산업은 2030년까지 40조위안(약 7904조원)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긍정적 논조를 보였다.
그러나 11월 들어 다른 국영신문 경제일보가 돌연 "메타버스는 모든 지역에 적합한 것이 아니며, 현실과 동떨어진 투자가 이뤄져선 안된다"며 경고하는 논조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러한 논조는 지난해까지 중국 국영 언론들이 일제히 "메타버스는 투기 키워드"라며 비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다른 국영신문 중국일보의 12월 19일 보도를 살펴보면, 메타버스 시장의 다양한 시장 가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도 허차오 메타버스산업위원회 사무총장의 "메타버스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국영 언론들의 논조가 급변하는 이유를 두고 "시진핑 정권의 '하나된 중국' 기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메타버스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나, 지방 정부들의 투자 행보가 자칫 중앙 정부가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진핑 정권이 항상 경계해온 중국 빅테크들이 지방 정부와 결합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메타버스 '시랑(希壤)'을 공개한 바이두의 본사는 베이징이다. 메타버스 '야오타이(瑶台)'를 개발 중인 넷이즈의 본사는 저장성, 중국 최대 빅테크 텐센트의 본사는 광둥성이다.
IT 매체 악시오스는 올 중순 정부의 메타버스 행보가 "경제 성장과 디지털 통제 기술 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키워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상하이 소재 다쉬에 컨설팅의 류한위 연구원 역시 "중국 정부의 메타버스 사업의 목표는 중앙 집권화"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메타버스 행보는 국내 IT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비영리기관 글로벌혁신센터는 최근 양국의 업계 관계자 약 500여 명을 초청해 온라인 가상 공간에서 '한중 메타버스 산업협력포럼'을 개최했다.
김종문 글로벌혁신센터장은 이날 "메타버스는 아직 세계적으로 발전 초기 단계에 놓인 분야로, 한국과 중국 정부 모두 정책적 관심을 쏟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며 양국 간 협력과 보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가 중국의 태도 변화에 뒤통수를 맞은 전례도 있다. 지난달 텐센트가 OTT 서비스에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을 론칭하자, 한국 대통령실은 "중국이 6년만에 자체 OTT서 한국영화 상영을 재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중국 정부는 저작권 전담 기구 중국판권보호중심에서 모든 종류의 소프트웨어 저작권 등록 신청을 중단하는 형태로 콘텐츠 문호를 걸어잠궜다. 이러한 정책의 이유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정책을 내걸었다.
쥴리아 인터레스 DS&A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경제적 야망과 정책 지침 등을 고려할 때, 메타버스 시장 발전을 추진함과 동시에 다방면에 규제를 적용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며 "메타버스 분야 투자자들과 이해 관계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정책 기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평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