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간 현대백화점 주가 약세의 배경에는 인적분할 무산에 따른 기대감 상실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4분 현재 주가는 소폭 상승세를 보이며 5만71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주의 경우 인적 분할 무산 여파로 한주간 7.38% 하락했다고 소폭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한 이유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함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인적분할을 하고 지주회사로 바뀐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의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했지만 현대그린푸드만 성공한 것이다. 인적 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자기 지분율대로 새로 생기는 법인의 주식을 분배해 소유하는 형태의 기업 분할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9월 주력 계열사인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를 각각 인적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한 배경에는 오너 지배권 강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지분 보유 상황을 살펴보면 정지선 회장이 17.09%를 갖고 있고 현대그린푸드가 12.05%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A&I가 4.31% 지분을 갖고 있는데 현대A&I는 투자전문기업이며 정지선 회장이 지분 73.39%를 보유중이다.
정 회장은 자신의 현대백화점 지분과 현대A&I 지분, 정몽근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2.63% 지분을 합쳐 대략 24% 정도의 현대백화점 지분을 갖고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배력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향후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 분리 가능성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지선 회장이 형이고 정교선 부회장은 동생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의 경우 1대 주주가 정교선 부회장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을 크게 둘로 나눠보면 현대백화점이 이끄는 유통 부문과 현대그린푸드가 이끄는 비(非)유통 부문으로 볼 수 있다. 재계 인사들 중에는 현대백화점은 정지선 회장이 맡고 현대그린푸드는 정교선 부회장이 가져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그룹이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에 순조롭게 지주회사 추진이 진행됐다면 현대백화점그룹 안에 두 개의 지주회사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형제가 하나씩 맡으면 계열분리로 순탄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문제는 이번에 주주들의 거센 저항 때문에 현대백화점 지주회사 추진이 무산됐다는 점이다.
현대백화점도 지주회사 추진이 성공했다면 정지선 회장은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지주회사 추진을 하게 된 현대그린푸드의 상황을 살펴보면 정지선 회장이 어떤 이익을 놓쳤는지 알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지에프홀딩스라는 지주회사 밑으로 들어간다. 인적분할 형태로 기업을 분할할 때는 기존 주주가 자신의 지분율대로 신설법인 주식을 받게 된다. 정교선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지분 23.8%를 갖고 있으므로 지주회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각각 23.8% 받게 된다.
만일 현물출자 유상증자가 진행되면 정교선 부회장의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율이 커진다. 현물출자 유상증자는 주주가 자신이 갖고 있는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 형태로 넘기고 지주회사의 신주를 받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갖고 있던 지분을 지주회사의 새 주식과 교환하는 것이다. 현대그린푸드 주식과 지주사 주식을 맞바꾸면 정교선 부회장의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율은 늘게 된다.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은 1대 주주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좋은 제도다.
결국 정지선 회장이 현대백화점 지주회사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 이유는 주주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지선 회장 자신은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지만 다른 주주들은 자신들이 얻을 것은 적다고 봤을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난 10일 임시주주총회에 내놓았던 ‘현대백화점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은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해 통과되지 못했다. 재계 인사들은 소액주주, 외국계 기관투자자, 국민연금이 반대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반대를 했다는 점은 상당히 주의깊게 봐야 할 일이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로 일할 때 여러 대기업 수사를 맡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직접 은행과 이동통신사에게 고통을 분담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은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은행이나 대기업에게는 불리한 시점이다. 현대백화점그룹 입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부담스럽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10일 현대백화점·현대그린푸드 임시주총 결과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현대백화점은 이번 임시 주총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그간 추진해왔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특히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했던 분할 계획과 주주환원정책이 주주분들께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시대 월급쟁이 재테크’를 쓴 우용표 작가는 “현대백화점의 지주회사 전환 실패는 물적분할, 인적분할에 대해 더 이상 소액주주,투자자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분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며 “기존 물적분할이 소액주주들과 정치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됨에 따라 기업들은 인적분할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적분할은 이론적으로 투자자들이 가진 주식의 가치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물적분할에 비해 투자자들의 저항이 적기는 하다”며 “다만 금번 현대백화점 관련해서는 가칭 현대백화점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알짜 사업들은 지주회사 밑으로 넣고 부채를 안고 있는 사업부분은 존속기업인 기존 현대백화점이 그대로 안고 간다는 점에서 주식 가치가 훼손될 염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계 인사들은 지주회사 추진이 무산됨에 따라 미래에 정지선 회장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현대그린푸드가 갖고 있는 현대백화점 지분과 교환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현대백화점 주가가 낮으면 지배권 불안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주가와 실적이 동시에 부진하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686억원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2%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3일 연결기준 지난해 매출액은 5조141억원, 영업이익은 3209억원이라고 공시했다. 매출액은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반면 순이익은 20.1% 감소한 1865억원에 그쳤다. 이렇게 실적이 부진하면서 8개 증권사에서 목표주가를 평균 11% 가량 하향 조정했다.
곽호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luckykhs@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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