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9개 부문 후보
지난해 애플TV+ '코다'에 작품상 내주며 '쓴맛'
지난해 애플TV+ '코다'에 작품상 내주며 '쓴맛'

특히 영화계의 텃세를 이겨내고 시상식에 뒤늦게 참가한 OTT 플랫폼이라면 영화제 트로피는 플랫폼의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선 넷플릭스는 애플TV플러스를 꺾었다. 애플TV플러스가 후보에 단 한 작품도 올리지 못한 반면 넷플릭스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작품상 포함 9개 부문 후보에 올리며 숙원을 해결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트로피의 향방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와 애플TV플러스가 경쟁한 가운데 애플TV플러스의 완승으로 끝났다. 넷플릭스는 작품상 후보에 '파워 오브 도그'와 '돈 룩 업' 2편을 올렸다. 반면 애플TV플러스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구매한 영화 '코다'를 후보에 올렸다.
'파워 오브 도그'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녀조연상 등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다. '돈 룩 업' 역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음악상 등 2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틱, 틱...붐!'이 남우주연상과 편집상, '로스트 도터'가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로스트 도터'의 경우 넷플릭스 자체 제작이 아닌 글로벌 판권을 획득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그린나래미디어가 따로 수입해 극장 개봉했다.
반면 애플TV플러스는 '코다'가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색상에 이름을 올렸다. 또 '맥베스의 비극'은 남우주연상과 미술상, 촬영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후보작 숫자로 비교하면 넷플릭스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결과는 애플TV플러스의 승리로 끝났다. 넷플릭스는 다른 영화들이 모두 무관을 기록한 가운데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게 감독상을 수상했다.
제인 캠피온은 아카데미 시상식 94년 역사에서 감독상을 받은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전에는 2010년에 캐서린 비글로우가 '허트 로커'로, 2021년에 클로이 자오가 '노매드랜드'로 수상한 바 있다.
반면 애플TV플러스의 '코다'는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 후보에 오른 모든 부문을 수상했다. 특히 '코다'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미라클 벨리에'는 실제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베로니크 풀랭의 자서전 '수화, 소리, 사랑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당초 영화계 일부 관계자와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가 작품상 유력 후보로 예상됐으나 '코다'가 수상하면서 이변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올해 애플TV플러스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단 한 작품도 올리지 못하면서 지난해와 같은 대결구도는 나오지 않게 됐다. 애플TV플러스가 지난해 만든 '레이먼드&레이', '해방' 등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모두 본상에 이름을 올리는데 실패했다.
특히 '해방'은 주연과 제작을 맡은 윌 스미스가 지난해 시상식 중 돌발행동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괘씸죄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넷플릭스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작품상과 국제영화상, 각색상, 음악상, 시각효과상 등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수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는 2021년에도 '맹크'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기술상을 가져갔고 2020년에는 '결혼이야기'로 여우조연상, 2019년에는 '로마'가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영화상 등을 가져가며 꾸준히 트로피를 챙겼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 중 최고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상은 번번이 눈앞에서 놓치면서 아쉬워해야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일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쟁영화다. 1930년과 1979년에 이미 영화화 된 적이 있으며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전 영화들이 영미권에서 제작된 영어 영화라면 이번 넷플릭스 영화는 독일 감독과 배우들이 독일어로 연기한 독일 영화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차 세계대전 중 서부 전선에 합류한 10대 소년이 참호에서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깨닫고 변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참호전투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전쟁의 공포와 허망함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계에서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잘 만든 전쟁영화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은 이번에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올해 최고 화제작이자 최다 부문 후보작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 가운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파벨만스'와 진중한 분위기의 인간 관찰 드라마 '이니셰린의 밴시'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슬픔의 삼각형'이나 '탑건: 매버릭', '아바타: 물의 길' 등 흥행대작 영화들도 복병이 될 수 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지난달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석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전(反戰)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를 의식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비영어권 영화인 데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에서 무관에 그친 점은 약점이 되고 있다.
현재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수상이 유력한 부문은 각색상과 촬영상, 국제영화상 등이다. 특히 촬영상은 '탑건: 매버릭'이 후보에서 제외되는 이변이 발생하면서 BAFTA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가능성이 커졌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3개의 트로피를 획득할 경우 넷플릭스는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할 경우 지난해보다는 나은 성적표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이변이 속출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 역시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생충'이 4개의 트로피를 가져가며 이변을 낳았던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무관에 그쳤다. 당시 '아이리시맨'은 '기생충'보다 많은 10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