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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와 손 잡은 中 항천과기…서브컬처로 '우주굴기'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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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와 손 잡은 中 항천과기…서브컬처로 '우주굴기' 선전

소녀전선·명일방주 등 글로벌 히트작과 컬레버
서브컬처 게임, 정부 선전 도구로 전락할 우려도

'명일방주' 차기작 '명일방주: 엔드필드' 예고 영상 중. 사진=하이퍼그리프 공식 유튜브이미지 확대보기
'명일방주' 차기작 '명일방주: 엔드필드' 예고 영상 중. 사진=하이퍼그리프 공식 유튜브
중국 정부가 '우주굴기'라 불리는 자국 우주 항공 사업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서브컬처 게임사들과 손을 잡았다. 게이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나, 글로벌 유명 게임들이 정부의 선전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녀전선' IP로 유명한 중국 게임사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는 지난 1일 소녀전선 출시 7주년을 앞두고 연 쇼케이스에서 차기작 '소녀전선 2: 추방'과 항천과기집단공사(CASC, 이하 항천과기)의 컬레버레이션을 공식 발표했다.
항천과기는 우주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기관 국가항천국(CNSA)과 발맞춰 우주 개발·항공 우주 산업 분야에 필요한 설계·제조·발사·운영 등을 총괄하는 국유기업이다. 소녀전선 2와의 컬레버에는 항천과기와 더불어 산하 연구기관 상하이 항천기술연구원(SAST)이 함께한다.

지난달에는 하이퍼그리프가 자사 대표작 '명일방주' 4주년 쇼케이스에서 항천과기와의 컬레버레이션을 발표했다. 이 협업에는 중국 우주 산업 홍보와 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전담하는 선저우 미디어가 참여할 예정이다.
소녀전선과 명일방주는 중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장기간 인기를 끌고 있는 서브컬처 IP들이다. 소녀전선은 2017년 해외 게임으로선 이례적으로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명일방주는 2021년 유비소프트의 밀리터리 슈팅 게임 '레인보우 식스: 시즈'와 컬레버해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화제가 됐다.

'소녀전선 2: 추방' 예고 영상 중. 사진=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이미지 확대보기
'소녀전선 2: 추방' 예고 영상 중. 사진=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

게임업계는 항천과기와 서브컬처 게임 IP들의 컬레버에 '이례적인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게임 정책 기조가 업계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온라인 게임 출판심사번호(판호)를 발급하는 등 게임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그 이전에는 몇 해에 걸쳐 IT업계를 고강도 규제, 반독점 조사 등으로 옥죄어왔다.

특히 서브컬처 분야는 게임 관련 규제와 더불어 중국 정부가 게임업체들을 상대로 선정적인 콘텐츠나 냥파오(미소년), BL(Boy's Love, 남성 동성애적 표현) 등을 전면 금지할 것을 요구하거나 검열을 통해 게임 내 아트웍 등을 수정하는 등 강경 규제의 대상이 돼왔다.

국내 서브컬처 팬들 또한 이번 항천과기와 소녀전선 2·명일방주의 컬레버를 두고 대체로 '놀랍다', '서브컬처 IP의 힘을 정부가 인정했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서브컬처 업계는 지난 몇 해 동안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서브컬처 종주국'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2020년 9월 출시후 2년간 5조원 이상의 글로벌 매출을 기록한 '원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언급한 소녀전선·명일방주 외에도 '벽람항로', '앙상블 스타즈', '음양사' 등이 장기간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하고 있다.

한 국내 게임사 사업 담당자는 "항천과기와 컬레버하는 두 게임 모두 미래 지향적 SF(사이언스 픽션)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다"며 "우주 정책 성과를 홍보한다는 면에서 마케팅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항천과기집단공사(CASC)가 2021년 9월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국제 항공우주 전시회(에어쇼 차이나)에서 정찰용 드론 모델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항천과기집단공사(CASC)가 2021년 9월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국제 항공우주 전시회(에어쇼 차이나)에서 정찰용 드론 모델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해외 게이머들 역시 대체로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 커뮤니티 레딧의 한 네티즌은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은 막으면서도 해외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인정하는 중국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엿보인다"며 "서브컬처 게임사들이 정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부'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국내 게이머들은 이번 컬레버 이후 중국 정부가 서브컬처 게임업계를 향해 영향력을 확대, 정부의 선전 도구로 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몇 해 동안 중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영화·드라마 등이 연달아 공개돼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지탄을 받아왔다.

투자 분석사 시킹 알파는 올 초, 중국 정부가 텐센트의 황금주(경영 정책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를 취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는 이미 2021년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의 황금주를 취득, 공산당 간부를 이사회에 합류시킨 전례가 있다.

바이트댄스 산하 게임사 뉴버스는 일본의 세가 등과 협력, 수많은 서브컬처 팬들을 보유한 '보컬로이드' IP 기반 리듬 게임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를 서비스하고 있다. 텐센트는 산하 브랜드 레벨 인피니트를 통해 국내 게임사 시프트업의 서브컬처 신작 '승리의 여신: 니케' 글로벌 배급을 맡고 있다.

홍콩 소재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의 데이비드 반두르스키 디렉터는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이미 수 십 년 동안 국가 선전을 위해 상업적인 미디어 기업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연구, 실천해왔다"며 "단순한 선전을 넘어 '선전이 아닌 척 선전하는 법'을 익혀온 것이 중국 정부"라고 경고했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제이크 덴튼 IT 정책 연구원은 "게임으로 성과 등을 홍보하는 것은 선전의 표면적인 모습일 뿐, 게임 속 이야기에 선전 내용을 내재화하거나 설치 파일을 통한 스파이웨어 활동 등 보다 폭넓은 '프로파간다'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적 조치만으론 이를 막는 데 한계가 있어 이용자 개개인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