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자에게 6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지난달 12일 출시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더 킹덤(이하 젤다의 전설)'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디아블로4'까지 출시됐으니 말이다. 이 두 게임은 20~30년 이상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초대작 IP여서 본인처럼 40대 중반을 넘어선 이에게는 더더욱 반가운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이 두 게임은 요즘 게임의 '트렌드'를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최신 게임들과 비교하면 매우 불편한 환경을 게이머에게 강요한다. 젤다의 전설은 주인공인 링크가 정체 모를 하늘섬에서 눈 뜨면서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장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진짜 무인도에서 눈 뜨듯 게이머가 임의대로 지상과 하늘섬을 돌아다니며 NPC들을 만나 정보를 모으고, 퀘스트를 진행해나가야 한다. '때론'이 아니라 '자주' 길을 잘 못 들고, 갑자기 보스 몬스터를 만나 도망다니게 만든다. 화려한 갑옷과 강력한 무기는 언감생심. 사실상 '졸병'부터 시작해 재료를 모으고 여의도 면적보다 넓은 하이랄 대지를 동분서주하며 차례 차례 몬스터들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
요즘 게임들은 주인공 캐릭터가 자동으로 NPC와 대화하고, 알아서 사냥과 전투를 즐기는데 반해 이 두 게임은 돈을 쓴다고 강해지지(Pay to wmin) 않고, 모든 과정을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먹힌다. 오랜 시간 동안 잊었던 긴장감과 때론 강력한 적 앞에서 너무도 손쉽게 '게임오버'돼 다시 강해지기 위해 반복적으로 전투를 펼치던 오기도 생긴다. 최근 몇 년간 잊고 있던 '게임불감증'이 사라지고 밤새 하고 싶게 만든다. 이는 비단 기자만의 경험이 아닌 듯하다, 디아블로4와 젤다의 전설은 출시와 동시에 온·오프라인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되고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게임은 게이머들이 즐겁게 즐겨야 한다. 그런데 요즘 출시되는 국산 게임들은 대다수가 소수의 '헤비 과금러'를 겨냥한 듯 보인다. 더 강해져서, 더 강한 랭커가 되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일부 과금러들과 그렇게 돈을 내지 못하는 대다수의 무과금 유저들로 게이머가 양분돼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임 대부분이 플레이 자체는 무료여서 초반 사전예약에는 수백만 명씩 몰리지만 레벨업과 강해지는 데 한계를 느끼는 게이머들이 조금씩 이탈하다가 결국에는 몇 만, 몇 천 명의 플레이어만 남게 된다. 철저하게 경제원리에 입각한 매출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웠기에 돈이 안 되는 게이머를 들러리로 만들고 있다.
디아블로4의 공식 패키지 가격은 일반판 8만4500원, 디지털 디럭스 에디션 12만3900원, 얼티밋 에디션은 13만6400원이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추가 과금요소가 없고 최소 수 개월간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인지 게이머들은 앞다퉈 디아블로4를 구매하고 있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역시 게임 패키지 가격이 7만4800원으로 비싸다. 여기에 스틸 케이스와 아트북, 배지 등이 포함된 '컬렉터즈 에디션'은 13만9800원인데도 불구하고 출시 첫날부터 곳곳에서 매진되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게이머들도 충분히 즐길 만한 게임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저 경쟁만을 강요하고 더 많이 과금하게 만들여 게이머들을 계급화하는 요즘 게임에는 이와 같은 팬덤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모쪼록 국내 게임들도 이렇게 게임의 본질을 추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투를 자동으로 맡기고 다른 일을 하다 수집한 아이템만 교체하는 게임 말고 실시간으로 적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긴장의 끈을 놓치 않게 만드는 그런 게임을.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