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계에서 버추얼 유튜버, 이른바 '버튜버'가 각광받고 있다. 한국을 포함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버튜버들이 파워 인플루언서의 반열인 '100만 구독'을 달성했다. 기업을 넘어 학계, 관공서에서도 버튜버를 도입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버튜버는 실제 인간이 모션 캡처 등 기술을 활용, 자신의 표정·몸짓을 실시간으로 따라하는 아바타를 내걸고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용어의 원조, 상업적 성공 모두 일본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대부분이 애니메이션 풍 미소녀 아바타를 활용해 대표적인 '서브컬처' 콘텐츠로 분류된다.
서브컬처는 직역하면 하위 문화로, 기존 대중문화에 비해 역사가 짧고 보다 마니아에 가까운 계층이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히 버튜버에 대해 일반인들이 접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일어나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주의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 버추얼 유튜버는 '가짜 방송인'?…"안에 사람 있어요"
버추얼 유튜버를 직역하면 '가상의 유튜브 방송인'이다. 실제 인간 모델이 없고 완전한 AI(인공지능)화를 지향하는 경우가 상당수인 가상 인플루언서, 혹은 '버추얼 휴먼(가상인간)'과 종종 혼동된다. 이 때문에 유명 버튜버를 두고 "사람이 아니다", "AI다"라고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인간과 아바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다. 버튜버의 생김새가 대부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가깝다 보니 이들을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성우'로 취급하거나 실제 인간의 '부캐'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이 캐릭터와 성우를 별개로 취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과 달리 버튜버와 연기자, 이른바 '안의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된다. 버튜버가 라이브 방송 중 생활 밀착형 토크, 과거 이야기 등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인기를 얻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으로, 이 때문에 버튜버의 '안의 사람'을 교체하는 것은 업계 내에서 심각한 금기로 통한다.
최근 유튜브 '중년게이머 김실장' 채널에서 인터뷰를 한 버튜버 그룹 브이레코드의 '아림' 박광근 대표 역시 이에 관해 "방송인이 버튜버 캐릭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도 '캐릭터가 아닌 사람의 특징이구나', '다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등 반응이 나온다"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버튜버를 접해도 나중에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의 사람'의 중요성과 별개로 이들의 이름, 외모, 신상 정보는 '전생(前生)', 혹은 영화 매트릭스에 빗댄 '빨간 약'이란 은어로 불리며 이를 파헤치는 것 또한 일종의 금기로 취급된다. 실제 버튜버 중 상당수는 외모 등 신상을 노출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바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유명 버튜버 중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전생'이나 실제 외모 사진이 더 큰 인기를 가져온 사례도 없지는 않다. 최근 100만 구독을 달성한 후 자신의 초등학생 시절 사진을 공개한 한국의 '대월향(Great Moon Aroma)'과 같이 거리낌 없이 실제 모습을 노출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예외로 봐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진은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중국 홍콩 성시 대학 등과 공동 연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실제 인간보다 카와이('귀엽다'는 뜻의 일본어)한 방송인'을 통해 "버튜버 시청자들은 대부분 '안의 사람'에게 인간적 감정을 가지면서도 어떤 면에선 아바타와 인간을 분리하는 묘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며 "플랫폼 사업자 등은 이러한 버튜버 고유의 문제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버튜버 종주국 일본, '생방송 문화' 생기며 함께 성장했다?
특히 버튜버의 역사에 관해 종주국이 일본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2016년 12월 데뷔한 일본의 '키즈나 아이'가 최초의 버튜버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 '니지산지' 운영사 애니컬러나 '홀로라이브 프로덕션' 운영사 커버 등 대형 버튜버 소속사 두 곳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일본에서 버튜버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선 △본래 서브컬처 종주국으로서 애니메이션 아바타에 거부감이 적다는 점 △성우·지하 아이돌·우타이테(인터넷 가수) 등 버튜버로 전업 가능한 엔터테이너들을 기르는 산업이 활성화됐다는 점 △라이브 방송 문화가 버튜버의 대두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 등이 주로 거론된다.
다만 '라이브 방송 문화가 버튜버와 함께 성장했다'는 의견을 뒤집어 '일본은 버튜버 이전에 라이브 방송 문화가 없거나 매우 약했다'고 이해하는 사례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이는 오해에 가깝다.
일례로 일본의 토종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 동화'에는 2008년부터 라이브 방송 기능이 있었고, 2011년 기준 약 5500개의 라이브 방송 채널이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와 연동된 라이브 방송 플랫폼 '트윗캐스팅' 또한 2010년 서비스를 개시, 5년 만에 누적 라이브 방송 송출 횟수가 5억회를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 한 버튜버 업체 관계자는 이에 관해 "한국에서도 아프리카TV, 혹은 그 이전에도 토종 인터넷 방송이 인기를 모았으나 유튜브·트위치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알려진 역사는 짧지 않냐"며 "일본도 마찬가지로 라이브 방송의 역사는 훨씬 길지만, 이러한 로컬 콘텐츠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시작점이 바로 버튜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일반 유튜버보다 쉽게 뜬다?…'버튜버'만의 어려움 적지 않아
일반 인터넷 방송인과 비교했을 때 버튜버의 차별점으로 언급되는 것은 '낮은 진입장벽'이다. 개인방송 시장 조사 업체 AFK스트리밍, 독일 가상현실 플랫폼사 센서리움, 미국 비즈니스지 와이어드는 공통적으로 "버튜버는 신분 노출 없이 표정·몸짓을 전할 수 있어 보다 적은 부담을 안고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도전하는 부담이 적다'는 것이 곧 '다른 방송인보다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수많은 이들이 '유튜버'를 향한 도전에 실패한 후 수십만원대 고가 방송 장비를 중고 거래하는 일이 잦은 것처럼, 버튜버 중에도 상당수는 무명 생활을 길게 이어간 끝에 '졸업(활동 중단)'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개인 방송 분석 사이트 유저로컬은 지난해 11월 기준 사측이 집계한 버튜버의 수가 2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들 중 '인플루언서'로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으로 꼽히는 10만 구독을 달성한 버튜버의 수는 800명, 4%가 채 되지 않는다. 25명이 도전해 1명만이 유의미한 명성을 얻는 셈이다.
버튜버만의 어려움에 관해 '아림' 브이레코드 대표는 "버튜버 아바타는 표정 조절 기능 등 일반 스트리머는 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조작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며 "또 손쉽게 오프라인 방송이나 여러 사람과의 합동 방송이 가능한 일반 유튜버에 비해 '버튜버라서' 제약이 생기는 일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메가톤급 성공을 거둔 버튜버들은 대체로 '절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트위치에서 최초로 100만 팔로우를 기록한 버튜버 '아이언마우스'가 대표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블룸버그 등과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종합면역기능저하증(CVID)이란 희귀 질환 때문에 오페라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으며, 버튜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서울 팝 컬처 컨벤션(서울팝콘)에서 한국 팬들과 오프라인 팬미팅을 가졌던 146만 구독 유튜버 '타카나시 키아라'는 방송 중 자신이 오랜 기간 무명 엔터테이너로 활동했던 것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엄청난 명작을 만들고도 좋아요 10개나 받으면 다행인 창작자가 세상에 널려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키아라가 소속된 홀로라이브에서 5년 가까이 현역 활동 중인 '유즈키 초코'는 이달 5일 방송 중 '버튜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시청자의 질문에 대해 "추천하기 어렵다"며 "우울해질 각오가 돼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뜰 수 있다는 법칙은 없고, 버튜버가 아니면 들을 일이 없는 심한 말도 많이 나오며, 자신을 봐주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100% 확실한 팬심'이라는 확신을 갖기도 어렵다"며 "이 모든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견뎌야 비로소 버튜버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