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IP '파이널 판타지(파판)' 시리즈의 최신작 '파판16'은 최근 서구권에서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렸다. 더 버지, 디지털트렌드, 메트로, 유로게이머 등 매체들이 연달아 "게임에 백인 외 유색인종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게임을 혹평했다.
게임계에선 이렇게 PC 문제로 논란이 일어난 사례가 적지 않다. '리그오브레전드(LOL)'나 '오버워치' 등 유명 게임의 기존 캐릭터에 성소수자라는 설정이 추가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올바름(PC)'이 주요 키워드로 대두한 시점은 1980년대로 알려져 있다. 백인과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에 보다 평등한 정책과 법을 도입하자는 것에서 출발, 문화 콘텐츠나 언어에서도 인종·성적 중립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등 실제 배우가 출연하는 영상 콘텐츠 업계에선 배우들의 캐스팅 기회에 따른 평등 문제가 결부돼 대중문화 중 가장 먼저 PC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에 관해 미국의 연예기획사 CAA(Creative Artists Agency)는 2017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개봉한 영화를 분석한 결과, 주요 출연진 중 유색인종 비율이 30%를 넘은 영화들이 그러지 못한 영화들보다 더욱 나은 흥행 수익을 거뒀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영상 콘텐츠에 PC가 과도하게 적용돼 작품성마저 해친다는 역반응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일례로 올 5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적으로 백인으로 기록된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묘사해 큰 논란이 됐다. 이렇듯 원작에선 다른 인종이었던 이를 굳이 흑인으로 바꾸는 현상을 뜻하는 '블랙 워싱'이 업계 내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되곤 한다.
이달 21일에는 월트디즈니 컴퍼니(디즈니)의 라톤드라 뉴턴 최고다양성책임자(CDO)가 입사 후 6년 만에 퇴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됐다. 디즈니 역시 올 5월 개봉한 영화 '인어공주'에서 원작에선 백인이었던 주인공 에리얼이나 에릭 왕자의 어머니 등을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등 지속적으로 PC 관련 논란에 시달렸다.
서구권 콘텐츠 업계의 PC 담론에 국내 주요 게임사들도 '문화 다양성' 등을 내세워 대응하고 있다. 2015년부터 '문화다양성펀드'를 운영하며 해외 콘텐츠에 투자해온 넥슨이 대표적인 예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9월 문화 다양성·포용(D&I)실과 최고다양성·포용책임자(CDIO) 직위를 신설했다. 넥슨과 더불어 3N으로 꼽히는 엔씨소프트(NC)와 넷마블은 각각 2021년, 지난해부터 발간해온 ESG 보고서를 통해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서구권 시장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 업계 상당수 사람들의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을 노린 게임에 있어 주인공 캐릭터의 성별·인종 등을 보다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는 등 개발진 차원의 노력도 있다"면서도 "PC에 대해 오랜 기간 피부로 접해온 서구권 게임사들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평했다.
NC는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 'ESG 플레이북 2021'에서 본문 52페이지 중 다양성·포용성 부문에만 5페이지를 할애했다. NC는 개발·QA(품질 검수) 과정은 물론 서비스 개시 후에도 △아시아 문화권과 다양성·형평성으로 나누어 직원 제안 그룹 형성 △제안에 따른 자문위원회 평가 △상위 결정 위원회에 보고 등 3개 과정을 거쳐 PC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게임사의 글로벌 사업 담당자는 "국내 등 동양권 게이머들은 PC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서구권은 PC를 중시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이 같은 지역별 온도차로 인해 앞으로 서구권에 진출할 국산 게임들이 몇 차례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