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맞설 만큼 군사 대국이었다. 패전 이후 일본 방위산업은 사실상 폐업 상태였다. 야금야금 이 분야에서 몸집을 키워온 일본은 이제 노골적으로 군사 강대국을 꾀하고 있다.
영국의 BAE 시스템스(BAE Systems)는 연말까지 아시아 본사를 일본으로 이전할 예정이며, 미국의 록히드 마틴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항공우주 및 방위 대기업인 BAE 시스템스는 올해 말까지 아시아 본사를 말레이시아에서 2022년 설립된 일본 자회사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곳에 지역 관리자를 두고 아시아 전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 나갈 방침이다.
BAE 시스템스는 일본 정부와 방산 대기업에 대한 마케팅, 협력 모색 및 공급 업체 확대 등을 꾀할 예정이다.
BAE 시스템스는 영국, 일본, 이탈리아의 공동 개발을 계획 중인 GCAP(Global Combat Aviation Program)의 핵심 회사다. 일본에선 방산업체인 미쓰비시 중공업 등이 참여해 이들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쓰비시 측은 회사의 직원 수를 늘릴 예정이다.
록히드 마틴은 아시아 관리 기능을 싱가포르에서 일본으로 이전하려고 한다. 록히드 마틴은 과거에는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초점을 맞춰왔다.
◇ 일본의 방위비 증강
록히드 마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대만 비상사태의 위험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긴장 고조에 대응해 왔다. 일본은 지대공 유도 미사일, 패트리엇 미사일(PAC3) 및 F-35 스텔스 전투기의 구입 등 여러 면에서 록히드 마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본 내 록히드 마틴은 한국과 대만에 대한 관리권을 가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국제 방산업체들은 일본을 아시아 방산시장에서 가장 떠오르는 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시아 지역 본사를 속속 일본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정책 변화가 있다. 일본 정부는 2023~2027년의 총국방비 지출을 이전 43조 엔(약 389조5800억원)에서 1.5배 늘릴 방침이다. 반격 능력 향상을 위한 장거리 미사일에 5조 엔, 노후화된 부품 교체 등 유지 보수에 두 배 이상 많은 9조 엔을 지출할 예정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10위로 전체의 2%를 차지했다.
일본이 국방비를 급속히 늘려감에 따라 많은 서방 기업들이 일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L3 해리스 테크놀로지는 2022년 6월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다니엘 수토 사장은 "드론과 전자전 같은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며 일본 방위성과 이에 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기뢰 탐지기 등을 놓고 미쓰비시 중공업과 협력해온 프랑스의 탈레스는 일본에서 직원 채용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파스칼 수리스 수석 부사장은 "우리는 적극적으로 일본 내 파트너를 찾고 있으며 기존 파트너와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방위산업의 고용 효과
튀르키예 군사회사 STM은 자폭용 드론 및 기타 제품을 일본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3월 지바시에서 개최된 국제 방위 장비 전시회 DSEI 저팬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회사는 이번 가을 일본 방위성이 주최하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살상용 무기 이전에 관한 3대 원칙의 운영 지침을 완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다른 국가와 공동으로 개발한 장비를 제3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허용된다.
영국과 일본, 이탈리아가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의 수출도 가능하게 됐다. 구조, 운송, 경보, 감시 또는 지뢰 찾기는 물론 치명적인 살상 무기의 수출 역시 허용된다.
일본이 국방비를 늘림에 따라 일본 방위산업체들도 사업 기회가 확대될 것이 자명하다. 지금까지는 낮은 수익으로 인해 최근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관련 기업들이 방위사업 분야를 포기했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전투기와 전함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 오자와 히사토는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단순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국방 예산은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은 관련된 많은 기업들을 먹여 살리고 그에 따른 고용 효과도 크다. 일본의 전투기 관련 회사는 1100여 개의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전차는 1300여 개, 군함은 8300여 개의 협력회사들과 연결되어 있다.
중견 기업의 한 임원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주면 그만큼 플러스다”라며 일본의 방위비 증가와 해외 기업들의 일본 진출을 반겼다.
이런 추세는 스타트업에도 순풍이 될 것이다. 무인 헬리콥터를 취급하는 프로 드론은 항만 보안에 수요 특수를 누리고 있다. 에어론 워크스는 각 기업들에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차근차근 군사 대국을 향한 길을 걷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눈길은 곱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를 둘러싼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