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널리 확산된 재택근무제는 비록 전체적으로 퇴조하고 있으나 현행 주5일 근무제를 주4일제로 바꾸는 방안에 대한 관심을 비약적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도 동시에 낳았다.
노사 모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게 된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주4일 근무제 도입의 타당성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출범한 국제 파일럿 프로그램 ‘포데이위크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지난해 6월 미국과 아일랜드 소재 기업들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실시한 주4일제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7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이처럼 글로벌 재계의 뜨거운 화두로 이미 급부상한 주4일제에 대해 독일의 유력한 정치인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이목을 끈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부 장관
널리 확산된 주4일제 논의에 대놓고 반대 입장을 밝혀 시선이 집중된 인물은 독일의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크리스티안 볼프강 린드너 재무부 장관이다.
현재 독일 연방정부의 내각에 몸담고 있으면서 연방의회 의원이자 친기업 성향의 자유주의 정당으로 지난 2009년부터 독일의 중도좌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당(FDP)의 대표까지 겸하고 있는 지명도 높은 정치인이다.
린드너 장관이 갑자기 세계적인 이목을 끌게 된 이유는 지난 3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한 정책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주4일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고강도 발언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4일제라는 개념 자체가 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주4일제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은 주4일제가 실제로 도입될 경우 임금도 아울러 줄어들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놨다.
린드너 장관은 주4일제가 말이 안 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제시했으나 “일하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 인류가 번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그는 “인류 사회가 그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그만큼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다른 방법은 몰라도 일하는 시간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인류가 지속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노조 강국 독일서 나온 이례적인 목소리
독일이 어느 나라보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나라라는 점에서 린드너 장관의 발언은 독일 기준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춘에 따르면 독일의 친노조 싱크탱크로 유명한 한스뵈클러연구소(HBI)가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주4일제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뒤 지난 5월 발표한 내용이 린드너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조사에 참여한 독일 시민의 무려 73%가 주4일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반대 여론은 1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린드너 장관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흐름이다.
그러나 린드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도 아울러 이 조사에서 확인된 점도 주목된다.
주4일제가 시행돼 임금이 깎인다면 감수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가 고작 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은 줄이면서 받는 돈은 그대로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포춘은 린드너 장관이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주4일 근무제가 현실화될 경우 부담이 가장 늘어나는 중소기업인들과 자영업자들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도 그의 발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독일은 내년 2월부터 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