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프로 테니스계 '3대 천왕'으로 꼽히는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테니스 연맹의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덴마크 스포츠 연구소 '플레이 더 게임(Play the Game)'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기준 세계 21개 스포츠 종목에 걸쳐 312건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오는 2034년에는 아시안 게임과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을 연달아 자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세계 엔터테인먼트 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스포츠를 비롯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기성 스포츠 외에도 프로 게임 대회, 즉 e스포츠 또한 중요한 타깃으로 꼽힌다.
2년 전, 사우디 국부 펀드 '퍼블릭 인베스트먼트 펀드(PIF)'는 유럽 e스포츠 기업 'e스포츠 리그(ESL)'를 15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e스포츠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 각계 인재를 영입하는 사우디의 행보에 국내 e스포츠 업계도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다. 새로운 대회를 앞둔 만큼 나달, 호날두에 버금가는 셀러브리티를 홍보 대사로 영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특히 한국과 리그 오브 레전드(LOL)란 종목을 넘어 세계 e스포츠를 상징하는 '페이커' 이상혁에게 '오일 머니'가 접근하려는 시도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e스포츠 월드컵'의 전신으로 지난해 사우디에서 개최된 '8게이머스' 대회에서 과거 '스타크래프트' 전성기를 함께했던 정명훈,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 등 네 전직 프로게이머가 초청돼 이벤트 매치를 가졌다. 총 상금 4500만달러(약 600억원)이 걸린 본 대회에선 이들 외에도 '스타크래프트 2', '철권' 등 여러 종목에 걸쳐 한국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
사우디의 이러한 투자 행보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대체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우디가 현재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전제군주제 기반 독재 정치가 이뤄지는 곳으로, 인종·성별·종교에 따른 차별, 외국인 노동자 권리 문제 등이 빈발해 '인권 후진국'이란 비판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사우디의 행보를 두고 자국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스포츠 분야 투자를 통해 세탁하려고 한다는 '스포츠 워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 테니스 연맹 홍보 대사로 취임한 나달 또한 성토의 대상이 됐다. 소셜 미디어에는 "한때는 열렬히 응원했던 나달이 오일머니에 스스로를 팔아넘겨서 충격받았다", "사우디가 스포츠에 침투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그들의 정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등 그를 향한 비판들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영국의 e스포츠 해설위원 '사이드쇼(Sideshow)' 조쉬 윌킨슨(Josh Wilkinson)은 최근 유튜브에 "사우디가 e스포츠를 중독시키고 있으며, 이를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한다"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그는 "사우디의 '스포츠 워싱'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거금의 투자를 '절대 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근거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수많은 팬들이 사우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공론화해야만 독재 정권이 스포츠와 e스포츠를 사유화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