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업정보기술부는 지난 8일 무역단체들에 보낸 가이드라인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30여 종의 중요한 자동차 반도체에 대한 기술 표준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이를 70여 종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중국은 기존 자동차 강국이었던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을 제치고 본격적인 자동차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연료전지차 등) 부문에서 글로벌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전체 판매 자동차 중 30%가 넘는 949만대가 신에너지차로, 이는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중국 대표 전기차 브랜드 비야디(比亞迪·BYD)는 지난해 4분기에만 52만6409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48만4507대에 그친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순수 전기차 판매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자동차 강국을 노리는 중국 입장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중국 자동차 전문지 가스구(Gasgoo)에 따르면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자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차량용 전력반도체의 경우 중국 국내 생산량은 전체 수요의 약 15%에 불과하다. 특히 자율주행에 필요한 고급 반도체의 경우 중국 생산량은 5% 미만이다.
또한, 중국 전체 자동차 반도체 자급률은 약 10%로 추산된다. 이는 일반 산업용 반도체 자급률이 약 20%인 것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신에너지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반도체를 사용한다. 중국 현지 제조사 기준으로 휘발유 차량에는 약 5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가지만 전기차에는 약 1300개, 운전자의 조작 없이 주행할 수 있는 레벨4 자율주행차에는 약 3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부족한 자동차용 반도체는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기술정보 전문 매체 지웨이(Jiwei)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업계는 주로 독일 인피니온, 네덜란드 NXP, 일본 르네사스의 차량용 반도체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중국 내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의 수만 300여 개에 달하지만, 대부분 자동차 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방침은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굴기’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중국은 미국이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의 자체 개발·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28나노 이상 공정으로 만드는 레거시 반도체(성숙 공정 반도체)의 자체 개발 및 생산량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서방 국가들에 대해 비교우위에 서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대중 반도체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상무부도 최근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산업 강화 정책을 예의주시하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는 등 본격적인 대비에 나서고 있다.
마침 고레벨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일부 고성능 프로세서를 제외한 대다수 차량용 반도체와 전기차용 전력 반도체는 가혹한 사용 환경과 그에 따른 안정성을 고려해 대부분이 28나노 이상 레거시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중국의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와 자급률이 높아질수록 중국의 반도체 자립 및 레거시 반도체 시장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볼보 자동차의 모회사 지리 자동차는 이미 자사의 SUV 차량에 자체 개발한 차량용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비야디도 이미 자체 개발한 전력 반도체를 자사 전기차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레이트월과 니오 등의 자동차 회사들도 관련 자회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개발 및 제조에 나서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이 28나노 이상 레거시 반도체의 개발과 생산에 대해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정부의 지원과 제조사들의 개발 노력 등이 지속된다면 최소 5년에서 10년 내로 대부분의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