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 게임업계가 지속적인 '정치적 올바름(PC)' 논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철폐, 성적 다양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매력적인 캐릭터'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비판이 지속되는 가운데 PC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국산 게임들이 대체재로 주목 받는 모양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소니IE)는 오는 29일, 한국의 시프트업이 개발한 하드코어 액션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 데모 버전을 공개한다. 이 게임은 오는 4월 26일 플레이스테이션(PS) 5로 독점 출시될 예정이다.
서구권 게이머들의 반응은 뜨겁다. 기존 인기 게임 '니어: 오토마타'나 '베요네타' 등에 비견하며 "이렇게 화려한 액션 게임을 근래 본 적이 있나",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내세워 좋다", "비주얼만으로 중독적" 등의 평을 내놓고 있다.
넥슨이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 역시 비슷한 반응을 얻고 있다. '빈딕투스'는 넥슨의 대표작 '마비노기 영웅전'의 후속작으로, 이달 14일부터 18일까지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프리 알파 테스트가 진행됐다.
해외에서는 특히 프리 알파에서 공개된 여주인공 '피오나'에 주목하고 있다. 246만 구독자를 보유한 미국 게임 전문 유튜버 '아스몬골드(Asmongold)'가 피오나의 비주얼을 보며 감탄한 모습이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문구나 이미지, 영상)으로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다.
서구권 게이머들이 이토록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만큼 현지 게임에선 이러한 캐릭터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개발사들의 게임에선 2010년 중반부터 매력적이거나 섹시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빈도수가 크게 줄었다. 그 자리를 유색인종, '현실적인' 외모의 캐릭터, 성소수자들이 채우는 사례가 많아졌다보니 게이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는 미명하에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새로운 검열이 시작됐다"며 반감을 갖고 비판하는 사례도 지속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공식 사이트 내 게임 개발자 포럼에 게시한 개발자 체크리스트에 △다양한 성적 지향, 인종을 가진 캐릭터들이 게임에 등장하는 비율을 확인하고 있는가? △부정적인 젠더 고정관념, 불필요한 젠더 장벽이 포함되진 않았나? 등의 항목을 포함해 게이머들 사이에 논란이 됐다. MS 외에도 주류 게임사 대부분이 이와 같은 'PC' 관련 조치로 인해 비판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서구권의 지속되는 PC 논쟁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앞세운 국산 게임들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들 역시 PC 관련 문제로 비판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스텔라 블레이드'는 주인공 이브의 외형을 두고 외모지상주의적, 성 차별적이라는 지적은 물론 외모가 다소 어리게 묘사됐다는 이유로 '페도필리아(소아성애)'적인 게임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브의 외형이 올해로 만 32세인 모델 신재은을 모티브로 했음이 알려지며 이러한 비판은 힘을 잃는 모양새다. 게임 커뮤니티 일각에선 오히려 "동양의 게임사가 만든 동양인 캐릭터에 서구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인종차별", "한국 등 아시아 개발사가 게임계의 희망"이라며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대형 업체들은 이미 이러한 '다양성' 문제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넥슨은 2015년부터 '문화다양성펀드'를 운영하며 해외 시장을 조사해 왔다. '로스트아크'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는 2022년 들어 최고다양성·포용책임자(CDIO)을 새로이 임명했다.
서구권 게임업계에 PC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미국 시장에 정통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내 다양성 논쟁이 비교적 성별 문제에 국한된 측면이 있고 그 역사도 그렇게 길지 않은 동양과 달리 미국을 위시한 서양 시장은 그 논쟁이 훨씬 다각적이고 심각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권은 다문화 사회로서 인종, 지역에 따른 차별 문화가 뿌리 깊게 지속되기도 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일부 정치인들이 '반(反) PC'를 노골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며 "그 반대급부로 PC를 요구하는 이들의 활동도 조직적이고 그 목소리도 크다 보니 한국을 위시한 해외 기업들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