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국 역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1%로 미국(71%)보다 훨씬 높고, 기업부채 비율도 미국(76%)보다 높은 125%에 이른다. 정부부채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400조원 가까이 늘면서 GDP 대비 50%까지 늘었다.
무엇보다 미국 부채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은 자칫 일시적으로라도 미국 정부가 부채 감당에 실패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쳐 국제 금융시장에 미증유의 위기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는 2034년에 역대 최고치인 116%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2일(현지 시간) 미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정부의 예상보다 더 빠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다양한 잠재적 경제변수를 반영해 총 100만여 회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오는 2034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CBO의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최대 133.9%까지 치솟을 수 있으며, 약 88%의 확률로 미국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부채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디폴트 위험도 증가한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법적 부채 한도는 31조4000억 달러(약 4경2465조원)였지만, 2024년 4월 현재 부채 규모는 최소 33조 달러(약 4경4560조원)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채가 증가할수록 재정 운용 능력이 감퇴하고,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상승할 우려가 커진다.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거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수도 있다. 앞서 미국 정부의 디폴트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11년 S&P가 미국 장기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리면서 당시 증시 및 채권시장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의 부채 상황은 역대 최악”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헤지펀드 시타델의 설립자 켄 그리핀도 지난 1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 국가 부채 증가 상황이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우려에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 계획이 부채로 인한 위기 상황을 견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옐런은 부채 지속 가능성 지표인 ‘GDP 대비 인플레이션 조정 이자 비용’ 비율이 여전히 관리 가능한 2% 미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블룸버그 역시 시뮬레이션 결과 이 수치가 2%를 초과할 가능성은 30%에 머물렀으며, 평균적인 추세로도 오는 2040년까지는 2% 미만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예상치를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한데다, 금리도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 계속되고 있어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고프는 “미국 정부가 부채에 대해 매우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후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