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를 만들지 않지만, 완성차에 적용하는 다수의 핵심 부분품을 생산‧공급하면서 완성차 업체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활용해 고객 친화적인 전기차 개발에 기여함으로써 시장 반등을 모색하겠다는 전략이다. LG가 전자‧IT 등의 사업을 통해 터득한 고객경험 노하우를 전기차에 접목시킨다는 방침이다.
세계 최고 권위 전기차 행사로 9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EVS37에 ‘LG’ 브랜드 아래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4개 계열사가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비전 스토리(A Visionary Story of Future Mobility)’를 주제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주춤하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의 활성화는 이를 미래 핵심사업으로 키우려는 LG에게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과제”라면서 “주요 계열사의 역량을 소개하는 EVS37을 통해 전기차 산업에서 LG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LG는 EVS37을 계기로 전자‧화학 기업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이미지 반전을 노린다. 그만큼 규모의 사업으로 키워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사실, LG는 모빌리티 사업을 스스로 포기할 뻔했다. 느슨했지만 자동차와 인연의 끈을 이어준 것이 LG전자 AV사업부 내의 ‘카 오디오 부문’이다. LG는 1997년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 조치에 따라 매출 비중이 미미하고, 성장 가능성도 불투명해 보였던 카 오디오 부문을 매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동차 오디오 사업이 품은 거대한 미래를 확신한 오너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의지 덕분에 가까스로 살려냈다.
완성차 사업을 일으키다가 IMF 외환위기로 프랑스 르노에 매각한 삼성자동차와 그룹 해체로 미국 GM에 경영권을 넘긴 대우자동차와 달리 LG는 자동차 관련 사업을 지켰다.
이후 LG전자는 2013년 자동차 부품 설계 엔지니어링 업체인 V-ENS를 인수하고, 같은 해 7월 VS사업본부(당시 VC본부)를 신설하며 전장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구광모 ㈜LG 대표가 취임한 첫해인 2018년에는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회사인 ZKW를 1조4000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 VS사업본부 산하 헤드램프 사업을 ZKW와 통합했다. 2020년에는 마그나인터내셔널과 1조원 규모의 전기차(EV) 파워트레인 합작사 ‘LG마그나 파워트레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 7월 정식 출범시켰다. 그해 9월에는 자동차 사이버 보안 기업인 사이벨렘도 인수하는 등 외형을 빠르게 넓혔다. 이를 통해 LG전자는 △ZKW(램프) △VS사업본부(인포테인먼트) △LG마그나파워트레인 등 전장사업 3대 축을 완성했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의 이차전지 배터리, LG디스플레이의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관련 부품, LG유플러스의 통신에 기반한 자율운항 솔루션 등과 융합해 모빌리티 통합 솔루션 공급자로 거듭났다.
LG가 자동차 사업의 끈을 이어간 덕분에 GM과 접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조기에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또 다른 LG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때 카 오디오 부문을 매각했다면, 지금처럼 빨리 LG가 현재의 위치로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그룹 내 역량을 결집해서 사업 시너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