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내놓은 해외직구(직접구매) 규제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알리 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 저가 서비스를 막겠다는 목적과 달리 특정 상품의 해외 직구를 국적, 목적과 달리 '원천 차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는 지난 16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규제안에는 어린이제품 34종, 전기·생활용품 34종 등 총 68개 부문 제품에 대해 KC(국가통합인증마크) 승인을 받지 않은 경우 직구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규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알리 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저가 직구 서비스가 있다. 이들로 인해 국내 영세 유통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직구 물품에서 위험 물질이 발견된 사례가 대거 보고됐다는 점 등이 문제로 거론됐다.
문제가 된 것은 규제의 범위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의 조치는 '모든 종류의 해외 직구'를 차단하는 형태를 띄었다. 또 전기·생활용품 중에선 스위치나 전기설비 연결부품, 전원공급장치 등 부품류가 대거 포함됐다. 어린이제품의 경우 34종의 제품 외에도 '모든 어린이 제품'이 금지 대상이라고 명시됐다.
어린이 제품의 주 고객인 부모들부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의 커뮤니티, 이른바 '맘카페'에선 "아마존, 이베이 등 미국 플랫폼에서 사던 어린이 제품이나 화장품은 왜 막는 건가", "미국 식약청, EU 안전 인증 받은 제품이 위험하다는 거냐"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피규어와 프라모델 등 완구 제품 취미를 가진 이른바 '키덜트족'도 마찬가지다. 이들 상당수가 중국이 아닌 일본, 대만 등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의존해왔다. 전자제품 규제의 영향을 받는 이들도 조립 컴퓨터 관련 동호인부터 스피커, 일렉트릭 기타, 전자 피아노 등 음향 관련 장비를 이용하는 이들까지 다방면으로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규제의 보호 대상인 '국내 영세업자' 사이에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개인이나 소규모 단위로 완구 제품을 직구, 판매해온 대행업자들, 외산 전자기기를 활용하며 수리용 부품 조달을 해외 직구에 의존하는 이들 대부분 "영세업자 살리겠다며 도입된 규제에 우리가 죽을 판"이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이번 규제안을 두고 '직구완박(직구 완전 박탈)'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번 법안에 불만을 가짐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국내 정부 부처에 관련 항의를 보내는 이들은 물론 광화문 등에선 1인 시위에 나선 이들도 나타났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규제안이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관련 의견서를 해외 기관에 제보했다는 인증을 올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나 주요 외신들은 물론 미국 국무부와 무역대표부, 영국통상부, 유럽연합(EU), 주한일본대사관 등 정부 부처에 의견을 보낸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콘텐츠 분야 전문 법조인으로 꼽히는 이철우 변호사는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는 제품들까지 무분별하기 해외 직구가 이뤄져 논란이 일기도 한 만큼 정책 도입의 당위성은 이해한다"면서도 "차단 대상 품목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했다.
그는 "개인 사용 목적 물품을 광범위하게 수입 제한하는 것은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실에 사적 자치, 계약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합리적 해석을 통해 적용 범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