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을 생산하는 국내 제강업체뿐만 아니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철근을 수입해 판매하는 유통상이나 국내산 제품을 수출하는 무역업계도 동반 부실의 늪에 빠졌다. 주택과 건물 건설공사가 중단되다시피 하며, 철근이 팔리지 않은 지 올해로 3년째다. 2022년 조짐이 일어날 때만 해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2024년 5월이 끝나가는 현재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제강업계는 당분간 철강 판매가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버티기로 들어갔지만, 붕괴 시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산 철근 유통가격 t당 60만 원대로 떨어져
27일 제강업계에 따르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국산 철근(SD400, 10.0mm 기준)의 5월 넷께 주 최근 대리점 가격은 t당 71만5000원이었다. 주간 단위로 가격 하락세가 이어진 결과다. 제강사가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건설사에 직접 공급하는 가격은 t당 70만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산 철근 가격이 60만 원대로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60만 원대로 하락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국산 철근 가격은 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판매 가격을 내리지 않는 ‘원칙 마감’ 정책을 고수해 표면적으로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시장의 실제 가격과 괴리감이 커지다 보니 거래량에 비해 철근을 더 얹어주는 물량 할인과 같은 비공식 할인을 통해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일부 대리점들이 자발적으로 70만원 아래로 국산 철근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입산 철근 가격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일본 및 중국산 철근 가격은 t당 68만원에 거래됐다. 업계에서는 외국산을 취급하는 소형 유통상들은 국내산 시세보다 5000원에서 1만 원을 추가로 내려 판매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1분기 국내 생산 203만t, 13년 만에 최저치
철근이 안 팔리다 보니 가격이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는데, 그나마 제강업계와 유통업계는 생산과 수입을 줄여 재고를 최소화함으로써 가격 급락을 방어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제강업계의 철근 생산은 203만2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9%, 전 분기 대비로도 7.4% 감소했다. 분기 기준으로는 2011년 3분기(197만t) 이후 약 13년여 만에 최저치다.
철근 생산 1위인 현대제철을 비롯해 제강사들은 올 초 비수기에 대대적인 철근 공장 보수를 실시해 가동시간을 줄이면서 감산을 단행했다. 하지만 봄 성수기에 들어섰음에도 철근 수요가 살아나지 않자, 자발적인 감산 체제로 전환했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제강과 YK스틸, 한국철강, 한국특강 등 중견 제강사들의 올 1분기 철근 가동률은 평균 60.0%로 전년 동기대비 7.7%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최고점을 찍은 후 3년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입금액‧중량도 반토막, 3년 연속 급감세
수입시장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를 활용해 철근(HSK 7214.20.1000)의 수입액을 집계한 결과, 올해 1~4월 누적 5300만달러로, 전년동월 대비 52.7% 급감했다. 수입 중량은 9먼3573t으로 46.3% 줄었다. 철근 수입은 2022년 이후 매년 금액과 중량 모두 전년 대비 30% 이상 줄고 있다.
국가별 수입도 올 1~4월 기간 일본산 수입이 3300만달러, 1만141t으로 각각 89.7%, 89.9% 급감, 사실상 수입이 중단됐다는 표현이 더 맞아 보인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중국산 수입 가격이 오르자, 원‧엔환율 수입 가격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일본산으로 수입선이 대체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사실상 좀비기업처럼 연명 중”
제강업계는 국내기업의 감산, 외국산 수입 급감에 따라 국내 철근 제품 재고도 줄어들면서 가격 하락을 어느 정도 저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며, 건설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철근 업계 관계자는 “제강사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면 고정비 부담도 중단한 만큼 커진다. 늘어난 고정비 부담을 제품가격에 반영해 인상해야 하지만 시장 위축으로 부담을 스스로 떠안아야 한다”라면서, “대형 창고와 가공 설비 공장을 운영하는 철근 대리점 등 수입업체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3년 넘은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업체들은 만성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다. 언제까지 줄어든 판매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만 버틸 수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철근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건설업계가 발표하는 부동산 개발 계획과 신규 착공 시기와 규모 등이 철근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들인데 이러한 것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라면서, “하반기 이후에도 철근 생산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