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연출, 전투 등 모든 면에서 따져봤을 때 잘 만들었어요. 문제는 비교 대상이 '원신'이라는 거죠. 출시 4년 뒤에 '원신 게 섯거라'를 외치며 나왔으면 많은 면에서 원신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진 못했다는 거에요. 차라리 장르나 테마를 좀 크게 비틀었으면 어땠을까 싶죠."
'원신'을 출시 시점부터 플레이해 온 게임업계 관계자 A에게 지난 23일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3D 오픈월드 액션 RPG '명조: 워더링 웨이브'를 주말 동안 플레이한 소감을 묻자 그가 한 대답이다.
'명조'는 서브컬처 팬들에게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으로 익숙한 중국 게임사 쿠로 게임즈가 개발한 신작이다. 개발이 한창이던 2023년, 텐센트가 쿠로 게임즈 지분 14.3%를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사전 예약 이벤트에만 약 3000만명이 몰리는 등 많은 기대를 받았다.
게임의 출시 초반 성과는 기대 이하다. 애플 앱스토어 기준 주요 4개 시장의 성과를 살펴보면 중국은 매출 최고 5위, 한국과 일본은 7위, 미국은 10위에 그쳤다. 대만에서는 출시 직후 1위에 올랐으나 27일 기준 5위로 왕좌를 오랜 기간 지키진 못했다.
이용자 반응도 미묘하다.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명조'의 이용자 평균 평점은 3.7점(5점 만점)이다. 대체로 게임의 그래픽적 완성도, 조작감, 액션성은 호평을 받고 있으나 난해한 스토리, 부적절한 음향 연출, 용량과 최적화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편이다.
앱 통계 분석 플랫폼 앱매직(AppMagic)에 따르면 명조는 23일 출시 후 나흘 동안 최소 500만달러(약 68억원), 최대 1000만달러(약 136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최근 넷마블이 출시한 카툰 렌더링 그래픽 액션 RPG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가 출시 후 24시간 동안 약 1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못내 아쉬운 성과다.
명조의 이러한 출시 초기 성과에 대해 앞서 언급한 A를 포함한 업계인 3인은 공통적으로 "원신의 대항마로선 아쉬운 점이 적지 않은 게임이며 앞으로도 원신 이상의 흥행 성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신은 중국의 호요버스가 2020년 9월 출시한 이래 최근까지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게임이다. 명조는 카툰 렌더링 기반의 3D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점, PC·모바일 멀티 플랫폼 게임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원신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임의 장르와 외형 외에도 이용자 인터페이스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는 점, 캐릭터와 전용 장비를 획득할 수 있는 확률형 뽑기 기반 비즈니스 모델(BM), 6주 단위로 패치가 적용되는 업데이트 로드맵 등 게임 콘텐츠 외적으로도 유사성이 많아 여러 게이머들에게 '원신의 대항마 자리를 노리는 게임"이란 평을 받는다.
국내외 게임을 다수 플레이해왔다 밝힌 여성 게임업계인 B는 "명조는 액션성이나 오픈월드 탐험, 퍼즐 중심의 미니 게임 등 구성이 제법 알찬 편이라 열심히 만든 태가 나는 게임"이라면서도 "스토리의 몰입감 면에서는 원신을 위시한 시장의 주류 서브컬처 RPG를 따라가긴 어려워 보인다"고 평했다.
모바일 서브컬처 RPG들은 흔히 캐릭터 디자인이나 게임성 측면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만, 스토리에서 고유명사를 과도하게 활용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을 장황히 늘어놓는 등 서사적 몰입감 면에서 악평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의 서브컬처 게임 상당수가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으나 원신은 이에 해당하지 않고 높은 몰입감을 가진 게임이란 평을 받는 편이다.
서브컬처 게임을 다수 플레이해온 게임사 직원 C는 "'명일방주'나 '뉴럴 클라우드' 등 유명 외산 서브컬처 RPG들도 스토리 몰입감 면에서 다소 잡음이 있었는데 '명조'에 비하면 이들은 양반"이라며 "서사적 완성도나 캐릭터 디자인의 다양성 등 여러 면에서 최근 해 본 신작 중 가장 기대 이하였던 게임"이라고 혹평했다.
명조가 중국 현지에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둔 이유 중 하나로는 명조 출시 이틀 전인 21일, 넥슨의 '던전 앤 파이터(던파) 모바일'이 현지 서비스를 개시했다는 점이 꼽힌다. '던파'는 중국에서 국민 게임으로 손꼽히는 IP로, 던파 모바일은 출시 후 6시간 만에 중국 현지 애플 매출 1위에 올랐다.
앞서 언급한 B는 이에 관해 "대내외적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명조 자체의 만듦새, 특히 세계관의 생동감 측면에서 원신의 대항마로선 부족함이 있었다"며 "3년 넘게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이어온 최근의 원신이 아닌 2020년 9월 출시 직후의 원신과 비교해도 명조보다는 당시의 원신을 선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C는 "일반적인 서브컬처 게임은 출시 후 3년이 지나면 매출이 출시 직후만 못한 경우가 많은 만큼 명조 등 원신의 대항마들은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작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도 호요버스의 '붕괴 3rd'와 비슷한 면이 적지 않았는데 이 게임과 명조 모두 'A급을 따라가고 싶었던 B급 게임'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긴 어려울 듯싶다"고 덧붙였다.
명조에 앞서 중국의 퍼펙트 월드 게임즈가 2021년 12월 선보인 '타워 오브 판타지', 일본의 반다이 남코가 지난해 6월 출시한 '블루프로토콜' 등도 출시 시점에 '원신의 대항마'로 꼽혔다. 최근 국산 신작 중에선 플린트의 '별이되어라2: 베다의 기사들'이 원신과 비교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세 게임 모두 '원신'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평을 받는 편이다.
현재 국내외 주요 차기작 중에도 '원신의 대항마'로 꼽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선 '명일방주' 개발사 하이퍼그리프의 '명일방주: 엔드필드', '벽람항로' 개발사 만쥬의 '아주르 프로밀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엔씨소프트의 'BSS(가칭)'이나 넷마블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빅게임스튜디오 '브레이커스' 등이 경쟁작이 될 것으로 꼽힌다.
A는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른 게임사들은 명조를 보며 '이 게임이 굉장히 잘 만들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심혈을 기울인 게임이라도 '원신의 대항마'라는 키워드로는 한계가 명확하고 그렇게 비교되는 것이 오히려 흥행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향후 게임 퍼블리셔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깊이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