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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1 가스전’ 산유국 신화 ‘영일만’에서 다시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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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1 가스전’ 산유국 신화 ‘영일만’에서 다시 실현한다

정부, 해방 후부터 석유자립 위해 육‧해상 유전개발 추진
1998년 동해-1 가스전 발굴. 세계 95번째 산유국 올라
2021년 생산 종료로 산유국 지위 잃어, 영일만에 기대
산유국 도약 주역 행운의 시추선 ‘두성호’ 선두 나설 듯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석유‧가스 시추선 두성호(왼쪽)와 두성호가 시추해 한국을 산유국 반열에 올린 동해-1 공구 시추설비가 일출을 배경으로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다. 사진=한국석유공사이미지 확대보기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석유‧가스 시추선 두성호(왼쪽)와 두성호가 시추해 한국을 산유국 반열에 올린 동해-1 공구 시추설비가 일출을 배경으로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다. 사진=한국석유공사
윤석열 대통령의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의 대규모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및 시추 결정으로 산유국 위상을 되찾기 위한 대한민국의 의지가 다시 타오르고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특히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경제성장 추진을 위해 경공업에 이어 중화학공업을 일으켰고, 그 결과 막대한 원유를 소비하는 국가가 됐다. 하지만 돈을 내고도 중동 등 산유국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에 정부는 일찍부터 “우리도 산유국이 되겠다”는 각오로 유전개발에 도전했다. 먼저 시작한 육상 유전개발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대신 1960년대부터 해상 대륙붕 유전개발에 나섰다.

대륙붕 개발은 당시 세계 7대 메이저 석유회사 가운데 하나였던 걸프(Gulf)가 1969년 서해 지역을 탐사하면서 시작됐고, 이듬해에는 셸(Shell), 텍사코(Texaco) 등도 참여했다. 하지만 모두 탐사에 실패해 광구를 반납하고 철수했다.
1979년 한국석유개발공사(현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돼 독자적으로 대륙붕 탐사 작업을 이어갔지만, 일부 시추에서 원유와 가스 존재 징후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대륙붕 탐사의 첫 상업적 결실은 1998년 동해상 고래 V 구조에서 천연가스를 발견하면서 실현됐다. 석유공사는 3개 평가정을 시추해 500만t의 매장량을 확인했고, 이를 ‘동해-1 가스전’이라 이름 짓고 개발을 시작했다. 유정 완결과 생산 시설을 설치하고 시운전을 거쳐 마침내 2004년 7월 11일 상업 생산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 반열에 올랐다. 동해-1 가스전의 성공에 힘입어 인근 동해-2 가스전도 2004년 발견했고, 2016년 9월부터 연계해 생산했다.

산유국의 꿈을 실현해준 동해-1 가스전과 동해-2 가스전은 2021년 12월 말에 판매를 위한 생산을 중단했다. 생산 종료까지 1800억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와 340만 배럴의 초경질유(콘덴세이트)를 생산했으며, 11억 달러를 투자해 24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동해-1, 동해-2 가스전의 생산 중단으로 한국은 산유국 지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전 시추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영일만 석유·가스전 시추 작업은 국내 유일의 시추선인 ‘두성호’가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성호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석유공사가 국내외 석유 개발에 직접 나서면서 건조를 결정해 1984년 5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건조, 올해로 41살이 된 베테랑 시추선이다. 미국·대만·러시아·중국 등 세계 곳곳을 찾아가 수백여 시추공을 뚫었는데, 원유·가스를 발견할 확률이 50% 이상으로 높아 일명 행운의 시추선(lucky rig)이라고 불린다. 1998년 동해-1 가스전 시추에 성공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동해-1 가스전에 이어 영일만 석유·가스전 시추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외국 업체의 기술과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우리 영토의 원유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두성호가 영일만 시추 작업에서도 또다시 행운을 가져다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