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계약을 맺고 'e스포츠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글로벌 게임업계 투자와 대회 개최를 병행해 'e스포츠 종주국'의 지위를 한국, 중국으로부터 확실히 뺏어가는 모양새다.
IOC와 사우디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최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e스포츠 올림픽 공식 개최를 목표로 12년 단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첫 대회는 내년 사우디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우디와 IOC의 파트너십은 그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해온 탈 석유·경제 다각화 정책, 이른바 '비전 2030'에 있어 중요한 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러한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사우디는 프로스포츠와 게임, 영상에 이르기까지 엔터테인먼트·콘텐츠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돈을 투자해왔다.
실제로 압둘아지즈 빈 투르키 사우디 스포츠부 장관은 IOC와의 계약 체결 보도자료를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후원에 힘입어 사우디는 프로 e스포츠 글로벌 허브로 거듭났다"며 e스포츠 올림픽 개최가 빈 살만 왕세자의 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우디는 2020년도 들어 "글로벌 게임 시장에 1420억리얄(약 50조원)을 투자할 것"이란 비전을 내세워 대규모 지분 투자에 나섰다. 사우디 국부 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는 지난 몇 해에 걸쳐 미국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와 테이크 투 인터랙티브(T2), 유럽의 엠브레이서 그룹, 일본 닌텐도와 캡콤, 스퀘어 에닉스는 물론 한국의 엔씨소프트(NC)와 넥슨까지 유수의 게임사로부터 각각 1조원 이상의 지분을 매입했다.
e스포츠 부문에서도 유럽 최대 규모 e스포츠 대회 주관 전문 기업 ESL(e스포츠 리그)를 인수하는 한편 2022년부터 '게이머스 에잇'이란 이름의 연례 e스포츠 대회를 열어왔다. 올해에는 이 대회를 'e스포츠 월드컵'으로 확대, 총 21개 종목에 걸쳐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우디가 e스포츠 올림픽 개최를 맡게 됨에 따라 'e스포츠 종주국'을 내세워온 한국이나 유력 종목을 앞세워 종주국 지위를 노리던 중국 모두를 제치고 실질적인 e스포츠 주도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e스포츠업계가 주축이 돼 2008년 설립한 국제e스포츠연맹(IeSF)은 2018년까지는 한국 협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그러나 이후 남아공, 미국 출신 회장을 거쳐 2023년 10월부터 파이살 빈 반다르 사우디 e스포츠·마인드스포츠연맹 회장이 협회장을 맡고 있다.
중국의 경우 텐센트가 세계적인 e스포츠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LOL)'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글로벌 배급 또한 맡고 있다. 자체 개발사인 티미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왕자영요'도 대표 e스포츠 종목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중국 정부도 2021년부터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게임용어표준 제안서'를 제출, e스포츠 표준을 중국에서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사우디 측에서도 올해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LOL이나 왕자영요 등 중국 측 게임 종목들을 확보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사우디가 텐센트 등 중국 측에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의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우디의 최종 목표는 앞서 언급했듯 프로스포츠와 콘텐츠 부문을 결합해 오프라인 관광, 온라인 관람을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허브'를 조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IOC와의 계약 외에도 사우디는 2027년도 아시안컵과 2034년도 월드컵 등 국제 축구 대회, 2029 동계 아시안 게임과 2034 하계 아시안 게임 등의 개최국 유치에 성공했다.
수도 리야드 인근 신도시 키디야에는 15만평 규모 '게임·e스포츠 지구'를 설립하고 있다. 4개의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을 세우고 약 20개 프로게임단, 30개 이상 게임사를 이곳에 유치해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게임 팬들이 방문하는 관광 지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