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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역대급 산불 재난이 드러낸 보험시장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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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역대급 산불 재난이 드러낸 보험시장 위기

대규모 산불로 잿더미가 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부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고급 주택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대규모 산불로 잿더미가 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부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고급 주택가. 사진=로이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대규모 산불이 보험 산업과 기후변화가 초래한 새로운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산불은 고가의 부동산이 밀집한 지역을 초토화하며 피해 규모와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기존 보험 시스템의 한계와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위험 관리 필요성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추산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무려 500억 달러(약 7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추정되고 있고 이 가운데 약 200억 달러(약 29조2000억 원)는 보험사들이 부담해야 할 몫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막대한 손실은 이미 취약해진 캘리포니아주의 보험시장을 더욱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산불 피해를 취재한 이코노미스트의 에린 브라운 미국 특파원은 “산불이 부유층이 거주하는 고가 주택 지역뿐 아니라 중산층이 밀집한 지역까지 파괴했다”면서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택과 삶의 터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브라운 특파원은 이번 피해 현장을 “어린이의 장난감, 다 타버린 세탁기와 서류 캐비닛,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정원의 나무 그네까지, 화마가 삼킨 잔해 속에서 주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묘사했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집을 지켰으나 산불로 인해 재산보험료가 급등하거나 보험 가입 자체가 어려워질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 피해 주민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현재 두 채의 집에 대한 보험료로 매달 약 1000달러(약 146만 원)를 내고 있는데 이번 산불 이후 보험료가 더 오를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보험 시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최대 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스테이트 팜은 지난 2023년 3월 캘리포니아주에서 약 3만건의 주택 보험 계약을 해지하며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는 산불 위험 증가와 더불어 캘리포니아주 법률이 보험사의 리스크 평가를 제한한 결과였다.

앞서 지난 1988년 주민투표를 통해 통과된 규정은 보험사가 기후변화 모델을 활용해 미래 위험을 평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만 위험을 평가해야 했으며, 이는 기후변화로 증가하는 산불 위험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의 개빈 잭슨 금융·경제 전문 기자는 “기후변화는 미래 위험을 재평가해야 하는 문제인데 캘리포니아는 이를 규제해 보험사가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면서 “결국 보험사들은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비영리 보험 프로그램인 ‘페어 플랜’에 의존하게 됐으나 이는 극히 제한적인 보상만 제공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페어 플랜은 최대 300만 달러(약 43억8000만 원)의 손실에 대해서만 보장을 해주며, 이에 따라 대형 부동산 소유자나 고소득층은 막대한 손실을 스스로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일부터 보험사가 모델 기반 위험 평가를 허용하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 위험을 반영한 가격 책정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잭슨 기자는 “비싼 보험료는 단기적으로는 부담이지만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경제적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면서 “장기적으로는 보험 시장의 안정성을 되찾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보험료 상승은 궁극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쳐 캘리포니아 지역 부동산 가격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