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만 상품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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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원지간"은 고사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개와 원숭이가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이 표현은 갈등이나 대립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최근 계엄령 이후, 탄핵 헌재와 조기대선 문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격화된 상황은 바로 이 "견원지간"의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각자의 입장에서 40%를 오르내리며 대치하고 있으며, 약 20%에 달하는 무당층은 그 흐름을 관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교,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과 혼란이 증대되고 있다.
한중일 역사 속에 지혜를 찾아야 할 시기
삼국지의 삼국 간 갈등이나 조선의 개화파와 수구파 간 대립을 "견원지간"에 비유할 수 있다. 최근 국회에서 총리와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국민에게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될수록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국민 신뢰는 흔들리고, 이는 국가 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 일본, 한국의 역사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보면, 내적 갈등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다. 삼국지 시대의 중국에서는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각자의 이익을 추구했으나, 협력과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전쟁을 반복함으로써 국력이 고갈되었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서는 다이묘들 간의 권력 다툼이 중앙집권 체제를 약화시켜 외세에 대한 대응 부족을 초래했다. 조선 말기의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갈등은 근대화의 발목을 잡고 외세의 침략을 방지하지 못했다. 한중일 모두 역시속에서 내적 갈등이 국가 자원의 낭비와 혼란을 초래한 사례들이다.
중국, 위·촉·오 삼국의 대결
삼국지 시대의 주요 인물로는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 등이 있다. 조조는 북방을 통합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으나, 촉나라의 저항과 제갈량의 치밀한 전략으로 남진에 실패했다. 촉나라가 가장 약한 세력이었지만, 제갈량의 전략적 대응으로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오나라는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했으나,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분열로 국력이 약화되었다. 삼국 간의 끊임없는 전쟁은 자원을 고갈시키고, 결국 진나라가 혼란을 틈타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 대립의 결과는 국가의 자원을 소모하고,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교훈을 준다. 삼국 간 전쟁은 군사적 비용과 민생 피해를 초래하며, 국가의 내부적 자원을 고갈시키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진나라의 통일은 국가의 재건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그 뒤에도 내부 문제로 인해 오랜 기간 불안정을 겪었다. 결국, 외부 세력의 개입을 초래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 다이묘의 대립
에도 막부 시대의 정치적 갈등은 다이묘들 간의 경쟁에 의해 복잡해졌다. 일본의 다이묘(大名)는 에도 시대에 각 지역을 통치한 지방 영주를 뜻한다. 그들은 중앙 정부인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하며 군사력과 경제적 자원을 관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해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나, 다이묘들 간의 지속적인 권력 다툼과 경제적 갈등은 일본 근대화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특히,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대립은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과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에도 막부는 다이묘들의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시도했으나, 이들 간의 갈등은 근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지 못했다. 19세기 들어 막부의 약화가 가속화되며 서구 열강의 개항 압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다이묘들 간의 경쟁과 갈등은 메이지 유신 시기 협력을 통해 막부 체제를 붕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조선 말기의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갈등은 국가의 근대화를 지연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개화파(開化派)는 강화도 조약 이후 개화를 지지한 정치 세력이다. 본격적인 활동은 흥선대원군의 하야와 고종의 친정 이후이지만 그 사상적 뿌리는 18세기의 북학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쿠데타를 준비하였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망명하면서 급진개화파는 몰락하였다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개화파는 일본을 모델로 한 서구식 개혁을 통해 국가를 현대화하려 했으나, 수구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쇄국 정책을 유지하려 했다.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여러 차례 쿠데타와 폭동으로 표출되었으며, 대표적으로 갑신정변에서 개화파의 실패는 외세 의존의 심화를 가져왔다. 수구파는 폐쇄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개혁을 저지했다. 보수는 점진적인 변화, 수구는 전통가치의 극단적 보존이라는 점인데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개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위정척사파를 가리켰다. 심상훈, 윤태준 등이다.
이 갈등은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시키고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의 연관성
오늘날 한국의 정치 상황은 과거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특히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인 대립은 삼국지나 조선 말기의 내적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이념에 따른 대립은 각자의 해석과 주장을 낳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은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최근 국회에서는 대통령과 총리의 탄핵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중국 삼국지와 조선 말기의 개화파와 수구파 대립에서처럼,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은 국가의 자원을 소모시키고 외부 세력의 개입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한국의 정치 상황도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인 대립이 경제, 외교, 안보 등 각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 진영의 입장을 존중하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립을 넘어서 국가 발전을 위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