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과 아울러 글로벌 무역 질서에도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트럼프 "부가세는 실질적 관세"
16일(이하 현지 시각) 악시오스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전날 올린 글에서 "부가가치세 시스템을 관세와 동일하게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가가치세는 미국 제품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무역 장벽이며 이는 관세보다 더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번 주초 무역 상대국들의 높은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도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이러한 조치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75개국 이상이 부가가치세를 시행 중이며, 특히 유럽연합(EU)의 평균 부가세율은 21.5%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부가세 제도를 지목하며 "이제부터 미국은 부가가치세를 관세로 간주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 포함 주요 교역국, 보복관세 대상 포함 가능성
미국의 보복관세 정책은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적용하는 각종 조세와 규제를 분석한 후 이를 상응하는 수준으로 되돌려 부과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은 개별 국가별 맞춤형 보복관세를 책정할 계획이며, 그 평가 기준에는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 부가세, 디지털세, 규제 환경 등이 포함된다.
한국은 10% 수준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국가로 보복관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미국의 자동차 및 전자제품 수출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이 이미 낮아 보복관세의 영향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미국이 비관세 장벽, 부가세, 디지털세까지 보복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혀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글로벌 무역전쟁 우려…EU·중국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특히 EU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EU는 27개 회원국이 모두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중국도 다단계 부가세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트럼프의 행보에 즉각 반발하며 “부가가치세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 체계”라면서 “미국이 일방적인 관세 조치를 부과할 경우 EU도 반드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무역전쟁과 보복관세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중국 상무부 역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상무부는 성명에서 "미국이 글로벌 무역 규칙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보복관세 부과를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글로벌 기업·금융시장 긴장…한국 경제에도 변수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도 긴장하고 있다. 독일, 일본, 한국의 대형 제조업체들은 미국의 보복관세 대상이 될 경우 수출 가격이 급등해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들은 이번 발표 이후 내부적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전략과 물류 비용 조정 등 대응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보복관세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글로벌 교역량이 감소하고, 이는 세계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EU와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것이며, 환율 변동성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보복관세 조치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긴급 회의를 열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과의 교역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보복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수출과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 4월 1일 최종 결정…무역협상 새 변수 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오는 4월 1일까지 각국의 조세 및 규제 환경을 분석한 뒤 개별 국가별 보복관세 방안을 확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주요 교역국들 간의 외교적 협상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특히 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와 무역 갈등을 빚는 틈을 이용해 미국과 무역협정을 조기에 체결하려는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국들도 미국과의 개별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