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긴급 정상회담서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유럽의 새로운 안보 체제 구축 시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수십 차례의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가운데, 유럽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주요국 정상회담은 미국과 유럽 간 가치관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소집한 이번 회담에는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영국의 정상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이사회의 수장들이 참석했다. 엘리제궁 고위 관계자는 "유럽인들이 집단 안보를 위해 더 많이, 더 잘, 그리고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며 회담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회담 참석자들은 단순한 의지뿐만 아니라 실질적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로 구성됐다. 특히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의 주요 지원국이자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영국의 참여가 주목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안보가 전환점에 있다"면서 "이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긴급한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수비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둘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세 가지 중요한 현실에 직면했다. 첫째, 1945년 이래 대서양 동맹을 지탱해온 가치를 미국과 유럽이 더 이상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 유럽이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해 방어할 수 없게 됐다는 점, 셋째,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계획에서 유럽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회담 직전 미국에서는 연이은 충격적 발언과 행동이 이어졌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유럽의 '과도한 규제'를 비판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전화통화를 통해 미-러 간 전쟁 종식을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의 안보에 주로 집중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특히 밴스 부통령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며 유럽에 대한 이념적 공세를 펼쳤으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대신 독일 보안당국이 민주주의 위협으로 감시 중인 극우정당 AfD의 앨리스 바이델 대표를 만나 파문을 일으켰다.
회담 불참국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헝가리 페테르 시야르토 외무장관은 이번 회담을 "친전쟁, 반트럼프, 좌절한 유럽 지도자들의 모임"이라고 비난했다.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코 총리도 "EU 관리들은 우크라이나 휴전에서 유럽의 역할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슬로베니아 나타샤 피르크 무사르 대통령은 "유럽 연합 내에서도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열망하는 유럽도 아니고, 존중받아야 할 유럽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안보 정책 재원 마련을 두고도 갈등이 깊다. 공동 차입 확대와 동결된 러시아 자산 활용 방안을 두고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NATO에 따르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크로아티아, 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는 모두 국내총생산(GDP)의 2% 미만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마크롱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언급했고 스웨덴도 이에 동참했다. 네덜란드는 "부정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나, 독일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며, GDP의 4%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폴란드는 파병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U 외교 소식통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이고 이념적인 입장이 이미 취약한 유럽의 단결을 분열시킬 수 있다"면서도 "파리 회담은 그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