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돌파·방산 호황…"미래 성장동력 절실"
상법 개정·지배력 강화…유증 시점 따른 의문도
상법 개정·지배력 강화…유증 시점 따른 의문도

방위산업은 전쟁 장기화로 주요 국가들의 방위비 증가라는 우호적인 경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분주하다. 글로벌 배터리와 방위산업 시장에서 선두로 올라서기 위한 승부수를 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증이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를 추가한 상법 개정안 시행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유증으로 모일 자금 2조원을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자한다.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짓고 있는 합작법인 투자, 유럽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 확대,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 시설 투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SDI의 유증 결정은 절박함에서 나왔다. 삼성SDI는 주력 시장인 유럽이 캐즘에 빠진 데다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빨라지며 시장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SDI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9%로 전년보다 1%포인트(p) 줄었다. 북미 시장에서는 경쟁 업체보다 생산능력이 떨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 20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방산 경쟁력 강화를 배경으로 꼽았다. 이 중 약 3분의 2인 2조4000억원을 해외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데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방산기업과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미국에 조선소를 보유한 호주 조선사 오스탈에 지분투자를 단행한다. 모듈화 장약(MCS) 스마트 팩토리와 무인기 엔진 개발·양산 시설 등 생산설비 확충에 쓴다.
한상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업활동(IR) 담당 전무는 "지금 투자 기회를 놓치면 지금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려버린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다"며 "재무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업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유증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로 시행될 경우 이번 유상증자도 주주들의 소송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업 투자 이외의 이유로 이사회가 유증을 결정했다면 상법 개정안에 따른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실적을 잘 내는 상황이고 유증 시점이 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키운 직후라는 점에서 유증 목적에 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상법 개정안 시행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사회가 목적이랑 계획을 분명하게 밝히며 유상증자를 결의하고 투자설명회(IR)를 통해 주주들에게 이를 충분히 설명했다면 상법 개정안에 따른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다한 것으로 법적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희·정승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