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의 휴전 중재 시도를 활용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더 큰 전략적 이득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미국 관리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흑해 선박과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부분적 휴전안에 대한 기술적 협의를 진행했다고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전략적 승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의지에 맞춰 협상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서방 제재 완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견제 등 다방면의 외교·경제적 성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NYT는 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라이시나 대화' 국제안보회의에서 러시아 외교 정책 고위 인사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두 트랙을 분리해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야체슬라프 니코노프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푸틴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무관한 ‘양자 의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그 나름대로 흐르고 있으며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나 푸틴 대통령에게는 미국과의 관계가 우크라이나 문제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특히 자국 항공사들이 운용 중인 보잉 항공기에 필요한 부품 수입 재개, 시베리아 상공 비행 허용 등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산드르 딘킨 러시아 외교부 자문역은 “트럼프는 ‘빠른 거래’를 선호하는 인물이며 협상에 난항이 지속되면 관심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한 러시아 측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달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백악관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에게 러시아 화가가 그린 ‘트럼프 초상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위트코프는 지난 22일 폭스뉴스의 전 진행자 터커 칼슨과 인터뷰에서 “매우 우아한 순간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 보장, 나토의 동유럽 철수, 우크라이나 군사력 제한, 우크라이나 내 정치적 영향력 확보 등을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표도르 보이톨로프스키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장은 “러시아는 나토 국가가 참여하지 않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배치를 수용할 수 있다”며 “전술적 휴전보다 미국·나토와의 상호 불간섭 모델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