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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기운으로 자연과 문명의 결합이 빚어내는 생명의 빛 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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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기운으로 자연과 문명의 결합이 빚어내는 생명의 빛 갈구

[미래의 한류스타(85)] 박종용(서양화가)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62x130,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62x130, 2018년
꽃과 구름을 스승 삼아 가슴에 집 짓고/ 눈골 깊숙이 찾아 들어/ 솔거가 되어버린 화가가 있었지요/ 한 점 한 점 찍어도 채울 수 없었던 본질/ 동서양을 타고 넘어 재료와 갈래 가리지 않고 정진한 예술가/ 마대에 거친 황토 거르며 참선하듯 수많은 형상 만들어 내며/ 센 바람 다스리는 신선인 듯 거침없는 필력/ 은은하게 모습 드러내리라 다짐하며/ 열정 우려내어 날마다 속이 찰지는 남자/ 혜지(慧智)의 여름바다 헤쳐가면/ 일렁이던 파도는 고운 ‘결’로 내려앉고/ 화사의 원색을 초월한 백색과 회색이 내공의 빛으로 다가온다

박종용(朴鐘勇, Park Jong-Yong)은 박기봉(부), 전욱남(모)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계사년 십이월 삼십일(양력)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부산 송도중 국어교사였던 선친은 서예가와 화가였다. 부친의 주말은 본가의 그림 작업으로 분주했고, 어린 종용은 그 옆에서 스케치하곤 했다. 형과 종용은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끌게 되었고 나중에 화가가 되었다. 종용은 함안에서 마산으로 거처를 옮겨 마산초, 마산 창신중학교를 마쳤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화투 그림 등으로 ‘그림 신동’이란 소리를 듣게 되자 화가를 꿈꾼다.
양정고 재학시절 조계사 건너편
고려민예사 전속작가로 창작 매진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

중학교를 마치고 화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상경한 종용은 양정고에 다니면서 조계사 건너편 고려민예사 전속작가가 되어 창작에 매진했다. 돈벌이를 위해 조계사의 단청을 보고 불화를 그리기도 하고, 삼각지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렸으며, 충무로에서 만화와 극장 간판도 그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본 그림과 골동품 등은 다양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박종용의 화작력(畵作力)은 자련(自練)되고 진화되어 갔고 스승을 꼽는다면 선친, 현민 박종헌(玄珉 朴鐘憲), 효정 심재섭(曉丁 沈在燮), 풍곡 성재휴(豊谷 成在烋) 선생을 들 수 있다.

교사였던 부친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어머니와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박종용의 한양대 중퇴로 이어졌다. 박종용의 청년시대는 인사동, 삼각지 화실 등지에서 만화, 산수화, 노안도, 영묘화, 책가도·백동자도·호렵도·까치호랑이 등 각종 민화류, 산신도·독성도·변상도 등 각종 불화(탱화) 및 호랑이 그림들을 밤낮으로 그려대면서 지나갔다. 그의 노동 생산적 작업을 넘은 달관적 예술 작업에 스승 풍곡 성재휴 선생은 물론 남농 허건(南農 許楗), 내고 박생광(乃古 朴生光),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화백 등 당대의 거장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작가 박종용의 창작시대는 활동지역 구분으로 화가를 꿈꾸던 고향시대(1953〜1969), 만화 및 극장 간판 등을 본격적으로 그리던 인사동시대(1969〜1979), 도자·조각 등 전 분야 개척으로 도약하던 용인시대(1979〜1990), 평면·도자·조각 등으로 경계를 확장한 천안시대(1990〜2006), 세계를 향한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 있는 설악산시대(2006〜현재)에 이르는 5기로 나뉜다. 서양화가 박종용은 생계형 재현을 넘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형상화한 오브제들이 살아 숨 쉬는 생명 예술을 갈망하면서 고민해왔다. 작가의 설악산 작업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우주와 통관하는 영적 기운과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내는 성스러운 창작이다. 작품마다 만개 이상의 점들이 분열, 확산을 거듭하면서 무한의 우주를 향해 있다.

부친 갑작스런 죽음 대학 중퇴로
각종 민화 그리며 청년시절 보내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30호, 90.9x72.7, 2018년

박종용 작 '무제', 100x100,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100x100, 2018년

박종용은 자연과 문명의 결합이 빚어내는 생명의 빛을 갈구하면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그는 지방전시(1972 마산 선화랑. 1973년 대구 반월당)와 군복무(1974~1977)로 통과의례를 마치고 인사동으로 복귀한다. 시대적 화려함과 다양한 경험들을 물리고 박종용 작가는 수원 크로바백화점 개인전(1985~1986)에서 한가람미술관 전시까지 15회의 개인전이 있었다. 내설악백공미술관이 착공(2006) 되면서 세계를 향한 비상이 시작되고, 내설악백공미술관 개관 및 개관기념전을 가지면서 ‘결’의 창작(2004〜2015) 및 탄생(2015~)이 이루어졌다. 그는 내설악백공미술관장(2006〜현재)을 맡아 미술 흐름을 수용했다. 박종용은 동서울미술관장(1986〜1988), 서울역사 프라자미술관장(1989〜1992)을 역임한 바 있다.

박종용은 김홍도 화(畵)의 재현 및 화조도 창작, 독창성이 강한 초상화 및 역동적인 누드화를 창작한 작가였다. 그는 민화나 불화, 최고 기량의 호랑이 그림, 산수화와 정물화, 파스텔화 창작, 도자 및 조각, 공예 타일 제작, 예술원형으로 주조 작업 등을 두루 거친 작가이다. 그러던 그가 우주의 이치와 생명의 운율을 시각화하는 생명의 작가임을 내세우며 추상미술 작가로의 정착을 선언하고 천일의 사투(2016〜2018)를 벌이며 흙의 기운으로 이 땅의 화평 기원하는 ‘결’을 탄생시킨다. 새 생명을 찾아내기 위해 몸부림친 오브제들,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는 ‘생명 갈구와 평화기원의 판타지’ 구현에 작가는 모두 ‘무제’로 배려한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어 동서양의 만남이란 종합・융합미학을 구현해온 작가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크고 작은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결’은 ‘여백의 미’ 속에 오브제를 형상화하는 공간 예술, 우주를 향한 갖가지 상상을 펼치는 평면예술, 철판과 돌, 나무 등을 활용하여 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설치 예술이 종합적으로 구성되어 절묘하게 조합되었다. ‘결’의 전시 열풍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개인전(2019), KBS 춘천방송국 개인전(2019), 인사아트플라자 전시(2019), 조형아트 서울 전시(코엑스, 2019),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2019), KIAF 아트서울(코엑스, 2019), 당진 문화원 전시(2019), 여수 아트디어션 갤러리 개관전(2019), 창원경남 국제아트페어(2019) 등의 전시회로 이어졌다.

​생계형 재현 넘어 사물 본질 탐구
영적기운 작품 쏟는 성스러운 창작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30x162,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30x162, 2018년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30x162, 2018년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작 '무제', 100호, 130x162, 2018년

작가 박종용은 시간 개념 없이 작업하고 작업 자체를 즐긴다. 마대 위에 응고된 흙 속에 찍어낸 ‘점의 미학’들로 발원되어 ‘결’로 형상화된 오브제들은 기계적 정교함을 뛰어넘는 작가의 자연스럽고도 숙련된 손놀림 때문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절묘하게 창작되었다. 그의 대표작들은 무제의 ‘결’에 들어 있다. ‘결’은 정신의 소산이다. 찍을 때는 물이지만 마르면 적어지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방향이 틀어진다. 최근에 감명 깊게 본 전시는 올해 3월 워싱턴시립미술관의 피카소 전시를 꼽는다. 그는 최근 몇 년간 국민대 행정대학원 해공 지도자상(2016), 제39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예술창작부문, 2019), 제7회 창조문화예술대상 대상(국회, 2019), 한국경제문화대상 미술부문 수상(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19) 등을 수상했다.

박종용 서양화가이미지 확대보기
박종용 서양화가

서양화가 박종용, '캔버스 천' 위에 '마대 천'으로 씌우고 아교와 고령토를 혼합해 바른 다음, 그 위에 아교와 석채를 혼합한 후 그림을 찍어낸다. 그의 작업은 붓의 눌리는 힘에 따라서 음계(音階)와 같은 효과를 노린다. 세게 누르면 점이 커지고 약하게 누르면 작아진다. 주위에 사람이 있거나 산만하면 그림에 방해의 정도가 나타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흙은 작가의 주재료이다. 물보다 무거운 흙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침전하기에 자주 저어 주어야 한다. 그릇의 물의 양이 '많고 적음'과 붓에 묻는 흙의 양에 따라 점 자체가 두꺼워지고 얇아지므로 박 화백은 흡족한 결과를 얻기 위해 늘 힘 조절과 균형에 집중하는 기교를 터득해왔다. 이제 세상의 모든 이치를 터득한 그가 굴지의 화랑이 점지한 K-아티스트로서 대성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