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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대한민국 문화재 여기검(女技劍) 대제전…8월 13일(토) 오후 7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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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대한민국 문화재 여기검(女技劍) 대제전…8월 13일(토) 오후 7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

8월 13일(토) 오후 7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대한민국문화재여기검협회(총예술감독 임영순, 평양검무 예능보유자) 주최, 평양검무전승보존회 주관, 이북오도청·도연임영순무용단·진주검무보존회·경기검무보존회·나루아트컴퍼니·승전무보존회·연풍예술단·와이비에스에듀 후원의 2022 ‘제3회 대한민국 문화재 여기검(女技劍) 대제전’이 펼쳐진다. 여기검무(女技劍舞)는 조선 중기에 흥했으며 충(忠)과 애국을 근본으로 숭무 정신과 기예적 성향의 검무이다. 대제전의 레퍼토리는 「궁중검기무」, 「평양검무」 재구성, 「통영검무」 「경기검무」 「진주검무」 「밀양검무」 「평양검무」 원형으로 구성된다. 차세대 전승자들은 검무에 대한 애정과 가치의 진정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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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대한민국 문화제 여기검 대제전(2021)


‘여기검(女技劍) 대제전’의 제1회 공연은 국립극장 하늘극장, 제2회 공연은 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조선 후기 궁중 연회에는 으레 검무가 들어가 있어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의미를 살렸다. 세 번째 대제전은 방대한 규모의 검무 전승자들이 전통의 보존과 예술성 고양을 통해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검무 발전을 도모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평양검무보존회’의 「평양검무」를 비롯해 「통영검무」 「경기검무」 「진주검무」 「밀양검무」(공연순서 순)의 특징을 비교할 소중한 시간이 제공된다. 공연은 전년과 비슷한 레퍼토리로 구성되었으며, 일곱 개 영역에 걸친 여러 지역 검무의 차별성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조에서 유행하여 현재에 이르는 검무는 시대, 지역, 목적에 따라 형태가 변해왔고, 궁중과 지방 관아의 연례의식, 민간의 향연에서 보편적으로 추어오다가 예술성을 강조한 춤과 의식용 춤으로 바뀌었다. 진검으로 추던 춤이 예술춤으로 전이되면서 자루 끝에 칼을 끼워 구부러지게 하여 유연한 몸동작으로 칼을 회전하면서 연희성과 상징적 미적 규범을 갖추고 있다. 여기검(女技劍) 대제전이 본격 괘도에 오르면 해주검무 등 연합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검무 단체를 불러들이고, 연령별 경연, 연변, 일본, 미국 등의 검무 단체와의 분격적인 교류와 연구를 병행하여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장점으로 삼아 검무를 세계적인 공연의 중심에 서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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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검기무

「궁중검기무」, 고종 정해 진찬의궤 '잡무곡(雜舞曲)에 ‘건무(巾舞)라고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항장(項莊)이 검으로 춤을 추었는데, 항백(項伯)이 이것을 소매로 막으며, '공막(公莫)'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데, 후에 검무가 되었다. 향악에서는 이것을 검기무라고 부른다. '전립(戰笠)을 쓰고, 전복(戰服)을 입고, 검 2자루씩을 가지고, 서로 상대하여 춤을 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검무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신라의 황창랑이라는 일곱 살 소년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그 소년을 애도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그를 본 딴 가면을 쓰고 춤을 추어 그 영혼을 위로했다.”라는 동경잡기(東京雜記), 풍속조(風俗條)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유행할 검기무의 전형으로 칼의 길이에서의 정상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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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순(평양검무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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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검무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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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검무본협


「평양검무」 재구성,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이봉애 원류 평양검무는 문화적 고유성을 담보한 역사성이 확실한 춤이다. 힘찬 기백과 활달함 속에 칼을 돌리는 동작 속 강함과 섬세함의 양면이 응축된 진귀한 춤이다. 평양의 각종 연회때나 외국 사신들과의 무역 거래 시에 빠지지 않고 추어졌던 애국의 춤 평양검무는 활달하고 동적인 남성적 동작이 많지만, 여성적 교태미도 겸비한 중성적 매력을 갖고 있으며 칼끝으로 땅을 치는 동작들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소중한 춤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원류 그대로의 사회적·당대적·현대적·미래적 가치를 지키는 희망의 춤이다. 평양검무는 입춤, 앉은 춤, 사위 춤, 칼춤으로의 역동적 변화를 보인다.

조선조 평양의 평안도 감영에서 행하던 의례와 민간의 각종 연향에 검무가 실행되었다. 평양에서 평양검무를 배운 적이 있는 이봉애(李鳳愛, 1923~ )가 복원,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대상을 수상하고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선생은 1985년 안양시 석수동 새마을회관 2층에 평양검무 보존회를 설립하고 전승활동을 시작했다. 평양검무는 1992년부터 경연대회에서 문체부장관상・금상・은상・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평양검무는 2001년 2월 23일 문화재 지정 당시 8검무로 25분간 타령장단만으로 추다가 느린 장단으로 종료되었다. 1996년 14분으로 동작을 줄이고 염불장단, 타령장단, 빠른타령장단, 타령장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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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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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검무


「통영검무」,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로 통영칼춤(통영검무)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 통제영 산하의 취고수청, 교방청, 악공조합등에서 양성되어 장졸들의 사기 양양을 위해 병선 위와 진지에서 추던 춤이다. 국방부의 문선대와 같은 역할이지만 여성 중심의 위문 활동 춤이다. 삼도수군 통제영 산하 교방청 출신인 김해근의 제자 정순남(승전무 예능보유자)으로부터 엄옥자(승전무 예능보유자)가 전수받아 오늘날 이충무공의 춘추향사, 생신, 기신제 때 헌무되어 오고 있다. 통제영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8명의 기녀가 칼을 들고 출전하는 창졸들의 심정을 강인하고 굳건한 전투력으로 무장시키던 춤이다. ‘옥은 춤사위’로 내향적이며 조직적이고 섬세하며 우아하고 아기자기한 멋을 자랑한다. 전황(戰況)에 대한 해설 등이 춤의 심도를 떨어트릴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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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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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검무


「경기검무」,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3호 경기검무는 한국 전통춤의 오랜 역사적 맥을 잇고 있는 검무이다. 1900년대 한국의 전통 검무를 근대 가무악의 명무 한성준에 의해 무대예술 형식으로 재정립되었다. 조선권번이나 한성권번 등 서울, 경기지역의 권번에서 여기(女妓)들에게 지도한 바 있고 1937년 설립한 조선음악연구소에서 그의 문하생들에게 전수하였으나 모두 작고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 강선영이 경기검무를 전승하였다. 운정 김근희에 의해 전통의 춤 맥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3호(2011)로 지정되어 홀춤 검무와 대무 형식의 검무로 모두 전승되고 있다.

경기 검무는 활달한 기상과 강한 기질이 이 춤의 가장 큰 특징이며 검무 가운데 교태미와 연희적 기교가 두드러진다. 구성은 맨손에서 한칼, 한칼 옮겨가며 두 손에 칼이 잡히는 과정이 깔끔하다. 반주음악은 허튼타령으로 시작하여 자진 허튼타령, 당악 장단으로 빠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염불장단으로 마무리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춤의 구성이 대립과 화합을 반복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대형의 변화가 직선과 원형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있다. 미국 LA의 에이미 킴이 이수하여 그 세를 넓혀가는 해외로 넓혀가는 경기검무는 검무에 관한 추억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두 예인의 칼부림은 전반와 후반의 비교를 가능케 하며 후반의 절정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이 신명과 매혹을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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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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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


「진주검무」, 진주지역 전승 여성검무(검기무, 칼춤)이다. 신라인들이 애국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춤,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한 진주 기생춤이라는 설이 있다.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제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는 8명의 무희가 춘다고 해서 '진주 팔검무' 라고도 불린다. 현존 궁중무용 계열 가운데 그 역사가 최고(最古)이며, 행사 때 헌무로 올리는 것이 상례였다. 도드리·느린타령·빠른타령 장단에 여덟 무용수가 세로 두 줄로 마주 보고 서서 양손에 색동천을 끼고 칼을 휘저으며 춘다. 무복은 남색 치마에 옥색 삼회장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걷어 사대를 묶고 맨 위에 전복을 입으며 머리에는 조선 시대 군모를 본뜬 전립을 쓴다. 춤의 처음은 색동한삼을 양손에 낀 한삼 평사위로 시작되며 한삼춤과 맨손 사위로 이어지다가 본격적인 칼 사위로 마무리한다.

춤사위의 종류로는 한삼을 끼고 무릎을 굽혀 도는 숙은사위, 앉아서 추는 앉은 사위, 허리를 앞으로 엎쳤다가 뒤로 제치며 빙빙 도는 연풍대, 맨손으로 팔을 펴는 손사위 등으로 다양하며 독특하다. 허리띠를 잡고, 묶으면서 기교적 동작을 보인다. 무구로 쓰이는 한 쌍의 칼은 다른 검무와 달리 목이 꺾이지 않는 곧은 칼을 사용하며 장단의 구성이 독특하고 춤사위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진주검무는 현존하는 무형문화재 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반주악기로는 피리, 저, 해금, 장구, 북 등이 쓰인다. 진주검무는 연출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의 기법이 과거 궁중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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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검무


「밀양검무」, 밀양검무는 18세기 초 조선 영조 때의 밀양기녀 운심(雲心)이 밀양 응천교방에서 익힌 검무로 한양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밀양권번으로 이어져 오늘날 영남 춤꾼 김은희 밀양검무보존회장이 1988년부터 검무를 복원해 왔고, 현재까지 지속적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운심의 검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정유문집’ 중 <검무기劍舞記>(1769)에 그 형식과 내용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김은희는 문헌과 구전, 다른 지역 검무를 비교하면서 <밀양검무>를 우뚝 서게 했다. 당시의 춤사위를 연구하고 고증을 통해 무예적 춤사위, 무구, 장단, 의상 등 조선 후기 검무의 특징을 살린 <밀양검무>를 복원해 냈다. 밀양검무는 운심의 검무를 모티브로 하며 두 명의 무용수가 두 손에 긴 칼을 들고 서로 마주하여 날렵한 춤사위로 공격과 방어를 하고 마지막에 칼을 던지고 끝나는 무술적 성격의 쌍검무이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여 춤추면서 익숙하게 평화로운 세상을 영위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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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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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검무


「평양검무」 원형,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이봉애 원류 평양검무는 문화적 고유성을 담보한 역사성이 확실한 춤이다. 힘찬 기백과 활달함 속에 칼을 돌리는 동작 속 강함과 섬세함의 양면이 응축된 진귀한 춤이다. 평양의 각종 연회때나 외국 사신들과의 무역 거래시 빠지지 않고 추어졌던 애국의 춤 평양검무는 활달하고 동적인 남성적 동작이 많지만 여성적 교태미도 겸비한 중성적 매력을 갖고 있으며 칼 끝으로 땅을 치는 동작들이 대표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소중한 춤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원류 그대로의 가치 즉, 사회적 가치, 당대적 가치, 현대적 가치, 미래적 가치를 지키는 희망의 춤이다. 평양검무는 고구려의 기질과 심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춤사위는 역동적이고 활달하다. 뒷 디딤이 많고 칼로 땅을 찍는 동작은 평양검무만의 동작이다. 북한에서 명맥이 끊긴 평양검무는 기성권번의 기녀로부터 평양검무를 전수받고 월남한 이봉애(1923~2019) 선생이 안양에 정착하면서 전승을 이어온다.

평양검무는 2001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평양검무는 1대 이봉애 2대 정순임 3대 임영순 보유자의 노력으로 기세가 확장되었다. 검무는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추어진 후 궁중 정재로 채택되었다. 검무는 기녀·무예·의례·연희·무속· 신무용 검무 등으로 구분된다. 검무는 역사를 환치시키는 힘이 있다. 쾌자의 끝을 잡고 춤을 시작한다. 수를 가감하고, 시각적 대형변화, 진법을 통해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몸짓을 보인다. 칼을 집고 뿌리고 돌리는 강함 속에서도 여성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으며 칼끝을 땅으로 친다. 독무에서 수가 늘어 나는 늘어나는 군무의 스펙트럼은 다채롭고 악사의 음악, 칼의 운용, 움직임, 사위와 디딤에 걸친 연기력, 세련된 복식, V자와 같은 종횡의 라인 감각, 강강술래와 같은 진용의 변화 구사 등 놀라운 숙련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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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검무전승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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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검무보존회


평양검무의 원칙적 안무 구성은 2열 4행 8검무이지만 형편에 따라 6검무, 4검무, 2검무 등을 추기도 한다. 평양검무는 대개 8인무와 2인무 안무구성으로 나뉜다. 짝수의 연원이 두 손에 든 칼을 위로 올렸다 밖으로 내돌리다가 바닥을 콕콕 찍는다. 음악은 염불장단→자진타령장단(전반부)→타령장단→자진타령장단(후반부) 순이다. 전반부의 평양검무의 진행은 무작→농검→ 집검→ 각용재이고, 후반부에서는 연풍대→제행이무로 진행된다. 평양검무의 대표적 춤사위는 선 손춤, 앉은 손춤, 앉은 칼춤, 선 칼춤, 연풍대, 제행이무이다. 맨손으로 서서 무작(舞作)하다가 춤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해 음악의 속도를 몰아 각용재로 극적인 변화를 주어 앉아서 상대궤무(염불장단)를 한 후 칼을 잡고 앉은 칼춤을 추고 이어서 선 칼춤(자진타령장단)을 춘다. 후반부에 음악의 속도감을 살려 범표 이농수 검무(타령장단)에 이르면 연풍대(자진타령장단)로 대형변화를 일으키고 일렬로 서서 춤을 끝맺는다.

무대구성은 횡대-종대-상․하(입․좌)-전진․후퇴-원-종대-횡대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복식과 무구(舞具)는 홍색 옷고름에 남보라색 속치마를 입고 청색 치마, 황색바탕에 청색 끝동 저고리를 입는다. 저고리 위에 소매와 섶이 없는 청색 전복을 착용하고 전대를 맨다. 뒷머리에 쪽머리를 하고, 무관이 착용하던 공작모를 단 전립을 쓴다. 그다음 술띠와 전복, 전대를 착용한다. 버선을 신고, 양 손 가장자리 끝에 일곱 쌍의 나비가 달린 단검을 들고 춤을 춘다. 한 손으로 전복의 끝자락을 손끝으로 쥐고 시작하는 검무, 어깨높이로 들어 손목을 꺾은 후 이마위로 올려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평양검무의 춤사위 특징은 동작의 반복성이다. 입춤사위 염불 18장단의 동작은 하나이다. 염불장단의 첫 박과 세 번째 박(拍)에 강조가 있다. 회전 동작은 왼쪽으로만 진행된다. 춤사위에는 한 장단만의 독립 사위가 있으며 수족상응(手足相應) 동작이 중심을 이룬다. 미학의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평양검무의 지원 문제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평양검무의 기본 구성형식은 2열 4행의 8검무이다. 4가지 연풍돌기에서 연풍대 사위는 상체의 숙임과 젖힘이 없이 회전만 있고, 칼로 땅을 찍으며 사위의 독자성을 띈다. 평양검무는 돌림사위와 기본동작을 위주로 번개사위와 칼뽑는 사위 등 위로 뿌리는 동작이 많아서 역동적이고, ‘칼돌려 머리쓸기’와 같은 특징적 사위가 존재한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올리는 공연 ‘대한민국문화재 여기검(女技劍) 대제전’은 천 년 이상을 이어온 검무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모두 여성인 검무의 주최들은 청춘을 검무에 바친 노련한 기교로 검무의 보존과 전승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개개인이 문화재급인 그들의 춤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원형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