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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예술감독의 '무구제'…동문 무용의 힘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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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예술감독의 '무구제'…동문 무용의 힘을 보여 주다

고궁의 뜰(춘앵전, 대표출연 이미주)이미지 확대보기
고궁의 뜰(춘앵전, 대표출연 이미주)
10월 25일(수) 19시, 국립 달오름극장에서 춤다솜무용단(대표 임정희 세종대 대우교수) 주최, 세종대 한국무용동문회(회장 박소정) 주관, 박소정 예술감독의 「무구제」(舞求題)는 김나연 아나운서의 사회로 춤에게 길을 묻는 춤을 선보였다. '춤을 구하는‘ 의식은 전통춤 아홉 개에 육십여 명의 동문 무용수와 매머드 스텝이 전통춤 맥 이음의 대화합의 장(場)에 같은 마음을 보여 준 흐뭇한 풍경을 연출했다. 세종대, 대한무용협회, 강북문화원, 세종대총동문회, 세계문화재단, 대정개발주식회사 우이종합건설주식회사, 해피넷 MASS C&G Lab, 가담 현대의원, 박소정 무용단, 정재연구회, 아악일무보존회, 고양댄스컴퍼니, 하담 이주연무용단, 벽사 정재만 춤 보존회, 조혜정검무보존회가 후원했다.

정치가 퍼질러 놓은 극단적 대립 사회에서 ’세대를 잇는 춤축제‘라는 부제가 붙은 정감 어린 공연은 한국무용사에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세종대 재직의 스승인 한영숙(승무: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정재만(승무: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양선희(세종대 무용학과 명예교수)의 춤 정신을 기리고, 바람직한 춤꾼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고, 무용계 선후배의 뜻을 서로 존중하고, 의지를 다지는 경건한 자리였다. 「무구제」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고, 흥겨우면서도 한이 서려 있는 우리 전통춤 「춘앵전」, 「태평무」, 「사랑가」, 「풍속도」, 「선비춤」, 「규장농월」, 「검무」, 「산조」, 「소고춤」으로 짜인 춤은 독무, 이인무, 삼인무, 군무로 인원을 변주하였고, 여성 무용수가 남성 일곱 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통문화 가운데 전통춤은 실존 가치를 소지한다.
박소정(예술감독, 세종대 한국무용동문회 회징, 왼쪽)과 양선희(세종대 무용과 교수 역임)이미지 확대보기
박소정(예술감독, 세종대 한국무용동문회 회징, 왼쪽)과 양선희(세종대 무용과 교수 역임)


공연은 시대를 대표 하던 명작들과 한 시대를 가득 채웠던 선조들의 춤사위를 고스란히 담아 우리 춤 문화와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과 책임감을 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의상과 장신구 등의 화려함은 패션쇼를 방불케 하였다. 전통춤의 계승·보존은 어렵고 고된 길이다. “우리 춤의 매력을 알리고 무용 예술의 대중화를 지속하면서 세종대 출신 무용인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춤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춤의 가치를 고양하고 다양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창조에 대한 도전의 근본이고 시작임”을 예술감독은 역설한다. 전통춤과 미래의 춤꾼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어우러져 춤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면서 전통춤과 창작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고궁의 뜰」(춘앵전): 향악정재 「춘앵전」(1828)은 효명세자의 대표작이다.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창제했다. 봄날 아침의 꾀꼬리의 자태가 여섯 자의 화문석 위의 독무로 표현된다. 시적 춤사위 '화전태’(花前態)의 미롱(媚弄)은 흰 이를 보이지 않고 곱게 미소를 띠고, 이 춤의 백미가 된다. 의상은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랑 앵삼(《鶯衫), 초록색 띠를 양어깨에 두르고, 붉은 띠는 허리에 맨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오색한삼을 두 손목에 끼고 우아하게 춤을 춘다. 춤사위는 상징적이고 시적 서정성과 예술성이 돋보인다. 두 팔을 어깨높이로 벌리고 좌우로 크게 한 바퀴씩 도는 동작(회란), 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도는 듯한 움직임이 표현된다.

태평성대(강선영류 태평무, 대표출연 강윤선)이미지 확대보기
태평성대(강선영류 태평무, 대표출연 강윤선)

사랑가(정재만류, 대표출연 손상욱)이미지 확대보기
사랑가(정재만류, 대표출연 손상욱)


조선의 순조 때의 보편적 예술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창사의 가사가 서정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娉婷月下步(빙정월하보, 고울사! 달빛 아래 걸으니)/ 羅袖舞風輕(나수무풍경, 비단 옷소매에 바람이 일렁이네)/ 最愛花前態(최애화전태, 꽃 앞의 자태가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靑春自任情(청춘자임정, 청춘에 정을 맡기려네)」 춤은 시문을 열며 시작된다. 압도적인 의상의 색상과 춤을 감싸고 있는 정절·용선·작선·미선의 위용이 「춘앵전」을 감싸고, 연희자는 주변을 받들면서 존중과 순정을 보이는 관계가 아름답다. (대표출연; 이미주 (사)정재연구회 예술감독, 출연; 정절: 윤상미 김지애 정민지 유수현 용선: 남궁선 이단비 작선: 이채영 변현조 미선: 김혜승 김동미)

「태평성대」(강선영류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92호로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많은 전통춤 가운데 원형 전달이 가능한 전통춤의 고전이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하게 가볍게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신명 기량을 과시한다. 남녀 무용수가 역할을 부여받아 궁중의 왕족을 연기하며 기원의 춤을 춘다. 내용과 형식이 뚜렷하고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소지한 완벽한 춤이다. 심적 실체는 은은하게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 도살풀이 가락을 탄다. 일월오봉도의 배경 영상을 타고, 춤의 형태는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격조의 독무와 군무를 오가며 연출력을 보인다. 거침없는 여섯의 춤은 노련함과 풋풋함이 조화된 공감의 춤이었다.

(대표출연; 강윤선 태평무 이수자·고양댄스컴퍼니 대표 및 예술감독, 출연; 김한길, 김윤지, 김시백, 안현정, 김시은)

풍속도(춘설, 원작 양선희, 재구성 안무 정경원, 오유진)이미지 확대보기
풍속도(춘설, 원작 양선희, 재구성 안무 정경원, 오유진)

선비의 기상(정재만류 선비춤,대표출연 정용진)이미지 확대보기
선비의 기상(정재만류 선비춤,대표출연 정용진)


「사랑가」(정재만류): 1940년대 근대무용가 조택원에 의해 초연된 작품이다. 달이 훤하게 비치는 밤의 서정이 깔린다.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 ‘사랑가’ 장면이 춤으로 시각화된다. 사내는 도포에 갓을 쓰고 양반 부채를 운용하고, 여인은 분홍 치마에 보랏빛 저고리로 감정을 드러낸다. 사랑을 알아버린 남녀가 빚어내는 열정의 한국화는 은근하게 미적 감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아름답게 승화된 사랑의 춤은 미풍에 흔들리는 깃털 같은 상상을 낳는다. 수평적인 구도로 재구성된 남녀 2인무는 대금에서 시작하여 가야금 주조 음악의 도움을 받았다. 이 춤은 송범-김문숙, 정재만-김현자의 춤을 전형으로 삼아 손상욱-이주연의 원숙한 춤으로 마무리하였다. (대표출연; 이주연: 승무 이수자·상명대 일반대학원 융합예술전공 외래교수, 손상욱: 무용단 ‘춤짓’ 예술감독·서울기독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규장농월(진유림류, 대표출연 최정윤)이미지 확대보기
규장농월(진유림류, 대표출연 최정윤)

검무(이매방류, 대표츨연 조혜정)이미지 확대보기
검무(이매방류, 대표츨연 조혜정)


「풍속도」(‘춘설’ - 원작 양선희): 조선은 상상의 나라이다. 민속화는 상상의 보고이며, 춤은 그림을 존중하였다. 그사이에 놓인 ‘풍속도’에서 ‘춘설’을 착안한다. 이 창작무용은 민가 여인들의 생활상 연구를 바탕으로 춤으로 묘사한다. 세부적 묘사가 설정되고 여인들은 감동적 색상의 한복을 입고 둥근 부채를 들고 등장하여 봄눈의 정갈함에 여인들의 몸을 비유한다. 가야금 산조 ‘춘설’에 맞추어 섬세하고 여성적인 기품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여인들은 봄눈 녹으면 실한 봄이 희망이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춤인 것을 모른다. 움직임이 가미되면 춤은 봄눈 녹듯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아름다운 봄날의 추억이다. (재구성 안무; 정경원: 세종대 무용과 겸임교수, 오유진: 세종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출연; 전민지, 최나경, 박지혜, 최승희, 조은서, 김슬기)

「선비의 기상」(정재만류 ‘선비춤’): 성리학이 왕성하게 꽃피던 시대, 조선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도(道)를 지키고 문무(文武)를 갖춘 선비는 청렴결백의 생활신조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시대 남성의 표상을 만들어 낸 시대였다. 벽사류 선비춤은 한성준에서 한영숙으로 이어지며 제자 정재만이 재안무한 작품이다. 이 양반춤은 기교적 우월성, 선비의 품격, 호탕한 남성성이 한국적 춤사위에 잘 번영된다. 거문고 가락과 타악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중후한 무게감이 실린 남성 춤이다. 재해석된 음악이 멋스러움을 더한다. 여유와 신념의 선비춤은 유연한 움직임에서 장엄미에 이르기까지 신비감을 간직하며 남성 춤의 매력을 발산한다. (대표출연; 정용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 벽사춤 대표·벽사 정재만 춤 보존회 회장, 출연: 노기현, 오정무)

산조(황무봉류,  대표출연 홍정윤)이미지 확대보기
산조(황무봉류, 대표출연 홍정윤)


「규장농월」(진유림류): 규장(窺牆)은 담 너머를 엿본다는 뜻이고, 농월(弄月)은 풍류이다. 선비들이 달을 보며 시를 짓고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는 모습이거나 여인네들이 흥겹게 아름답게 노는 모양을 가리켜 농월이라고도 한다.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아름다운 꽃을 찾아 벌과 나비들이 노닐 듯 멋들어진 춤사위와 낭창거리는 노랫가락, 현란한 장구 소리가 흥겨운 그림 같은 춤 풍경이 연출된다. '왔소. 나여기 왔소'의 노랫가락과 신윤복의 ‘미인도’가 분위기를 이끈 장구춤은 남성 1인에 여성 4인 구성으로 미풍을 맞이하듯 부동의 절제미를 선사한다. 익숙한 내용과 형식에서도 늘 몰입의 경지를 창출하는 것은 최정윤의 절대적 춤 기교에 기인한다. (대표출연: 최정윤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국립남도국악원 안무자 역임, 출연; 고태은, 오재정, 방윤미, 정준)

「검무」(이매방류): 조혜정의 검무는 이매방으로부터 전승받아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상은 새로운 문이 열리고 다듬은 검무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검은색과 붉은색 주조의 복식에 이매방 특유의 섬세하고 화려한 기예와 날렵한 춤사위가 변주된다. 유파와 관계없이 예술적으로 정제되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독특한 검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제한을 푼 검무는 즉흥보다 더한 창의력으로 새로운 틀로 청량감을 몰고 왔다. 조혜정은 이매방류 검무에 실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비트는 ‘반올림의 미학’을 도입한다. 아낌없이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조혜정의 검무는 여러 검무와 같은 듯 다른 묘한 매력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표출연: 조혜정; 조혜정검무보존회 대표 승무·살풀이춤 이수자, 출연; 홍영신, 허여진, 임상미, 배수현)

소고품(최종실류, 재구성 안무 정경원, 오유진)이미지 확대보기
소고품(최종실류, 재구성 안무 정경원, 오유진)


「산조」(황무봉류): 1960년대 철 가야금 산조에 맞춰 만들어졌다. 이 춤은 대한무용협회로부터 한국의 명작무 16호로 지정되어 전승자의 개성에 따라 추어지고 있다. '잔영', '회상', '정금에 담은 여인상', '연연' 등 부제가 붙어있다. 붉은 매화가 한가득 배경 막을 장식한다. 색상 찬란한 격조의 한복 차림의 여덟 여인이 산조의 품격을 춤춘다. 조명과 춤은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가야금 산조가 딴 머리 여인들의 위계와 진법의 묘미를 헤아리다 보면 봄이 다가와 젊음을 낚아챌 듯하다. 여전히 황무봉류 산조는 매력있는 레퍼토리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변주의 가치를 지닌다. 이 춤은 여러 갈래 예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춤이 되었다. (대표출연; 홍정윤 국립무용단 단원 역임, 출연; 정경원, 오유진, 정세라, 김혜진, 최예솔, 고혜영, 전민지)

「소고춤」(최종실류): 연꽃의 의미를 찾아 여성 무용수 여섯, 남성 무용수 1인이 작은 북을 들고 춤을 춘다. 흥신을 부르는 풍물놀이에는 쇠춤, 장구춤, 북춤, 소고춤과 같은 악기별 개인 놀음이 있다. 그 가운데 소고춤은 소고 앞뒷면 치기, 좌우 돌리기, 연풍대 등 다채롭고 수준 높은 고난도의 춤사위로 구성된다. 최종실류 소고춤은 진주삼천포농악의 벅구놀이(소고놀이)를 바탕으로 흥겨운 가락과 춤사위, 놀이를 적절히 재구성하고 있다. 이미 이 춤은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좋은 춤으로 각인되어 있다. 「무구제」도 이 춤을 맨 마지막에 배치하여 감동을 배가시켰다. 대중 춤의 클래식 화(化)에 성공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재구성 안무; 정경원: 세종대 무용과 겸임교수, 김혜진 세종대 무용과 외래교수, 출연; 문규리, 최나경, 박지혜, 최승희, 조은서, 김슬기, 김재원)

「무구제」 예술감독 박소정이 세종대 한국무용전공 동문의 힘을 보여 준 공연은 그동안 대규모 인원동원과 세종춤이 국가와 한국무용사에 이바지한 성과를 확인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춤은 같은 레퍼토리라도 시기, 장소, 출연자, 안무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깊어져 가는 가을 한가운데 원형 존중과 암시적 은유를 배합한 춤 구성으로 전통춤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행위는 아름답다. 기교적 전위(轉位)로 투박함을 다듬고, 우유(寓喩)적 관심에 새로운 규범(canon)을 만들어 가는 작업은 화려한 가을 이야기가 되었다. 내년 갑진년 푸른 용띠해의 「무구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2023년 「무구제」는 한국무용사에 의미 있는 공연으로 기록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촬영=한필름, 사진제공=춤다솜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