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파월 FOMC 피벗 (pivot) 역사의 교훈… 아서 번즈 vs 폴 볼커

글로벌이코노믹

오피니언

공유
0

[김대호 진단] 파월 FOMC 피벗 (pivot) 역사의 교훈… 아서 번즈 vs 폴 볼커

달러환율 국채금리 국제유가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가상 암호화폐 운명의 순간

제롬파월 FOMC 의장 이미지 확대보기
제롬파월 FOMC 의장
제롬 파월 미국 연준(Fed) 의장이 예고 없이 금리 인하를 언급하면서 뉴욕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2월 FOMC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 시기를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파월 연준 의장은 “너무 오래 기다릴 경우의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고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은 그러면서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하 시점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불과 10일 전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했던 기존의 톤과는 너무나 달랐다. 파월 발언 에 뉴욕증시 달러환율 국채금리 국제유가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가상 암호화폐등이 요동치고 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 발언은 뉴욕증시의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의 예상보다 더 완화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변화였다. 그는 불과 열흘 전인 12월 1일 미국 애틀란타 스펠만 대학 연설에서 “충분히 제약적인 정책 기조에 도달했는지 확신을 갖고 결론을 내리거나 언제 정책 금리가 인하될지 짐작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통상 상당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는 중앙은행 특성과는 전혀 다른 초단기 피벗(pivot·정책 전환)이었다. 그야말로 급변신이다.
파월 의장의 이 발언은 그동안 보아왔던 중앙은행 문법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전 세계 중앙은행 수장들은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 왔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면 논의조차 없다며 이를 일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야 기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면서 물가를 목표 수준까지 확실하게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완화적 기대를 잡지 못하면 물가도 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국제결제은행(BIS) 등에서도 성급한 피벗을 경계하고 나섰다. IMF는 최근 발표한 ‘백 번의 인플레이션 충격: 7가지 정형화된 사실(One Hundred Inflation Shocks: Seven Stylized Facts)’에서 1970년 이후 주요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가운데 5년 이내에 해결된 사례는 10건 중 6건에 그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물가 잡기에 실패한 대부분은 ‘성급한 승리 선언(premature celebration)’ 때문이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중앙은행들 입장에서는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에 수렴하더라도 금리 인하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준 인사들이 파월 의장의 말을 주워 담으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가 “연준의 관심은 여전히 통화정책이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절한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며 “지금은 정책 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 않으며 금리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수습에 나섰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금리 인하가 임박했다고 보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계속 둔화할 것이란 충분한 확신을 얻는 데 수개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의 기름을 부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회의에서 일부 위원들이 금리 인하를 언급한 것은 말 그대로 단순한 언급이었을 뿐 주요 논의 대상은 아니었다. 또 내년 중 세 차례 금리를 내리더라도 경기를 부양할 수준의 완화 정도는 아니므로 긴축 자체를 이어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역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한 현 시기에 맞는 발언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확실한 정보가 있거나 국제 유가가 급등해도 문제없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뉴욕증시 일각에서는 지지율 추락으로 궁지에 빠져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파월 의장이 1970년대의 아서 번즈 의장 때처럼 물가 반등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1972년 하반기부터 오름세를 나타냈다. 이듬해부터 상승 속도가 빨라지더니 1974년 마지막 달에 12.3%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 연준 의장은 아서 번즈였다. 그는 물가를 잡는다며 기준금리를 13%까지 높였다. 아서 번즈는 그러나 디스인플레이션이 제대로 확인되기도 전에 성급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통화정책이 굴복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이후 미국 물가는 다시 치솟았고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아서 번즈는 1970~1978년 Fed 의장을 지냈다.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서 금값 1온스당 35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치솟자 급기야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게 된다. 1차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1974년 말 인플레이션은 12%를 넘어서게 됐다.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그로 인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상승하고 거세지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1975년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임금과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1976년 물가는 다시 폭등하게 된다.

반면 폴 볼커는 1979~1987년까지 Fed 의장을 지내면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퇴치를 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실행하면서 1981년 기준금리를 최고 21.5%까지 올렸다. 볼커 전 의장은 긴축 정책이 단기적으로 불황을 초래하지만 기업의 구조조정 촉진, 실업률 상승과 임금인상 억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이윤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업들의 파산과 엄청난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결과 인플레이션이 14.6%에서 1983년 2.36%로 감소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 미국이 유례없는 1990년대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

파월 연준 의장의 말대로 조기 금리 인하로 연착륙을 달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서 번즈의 역사적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닉슨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아서 번즈의 조기 피벗은 이후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다. 10여 년 이상 전 세계가 물가 폭등에 시달렸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도 아서 번즈의 성급한 금리 인하 피벗과 맞닿아 있다. 파월의 조기 피벗이 불안한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