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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못에 관한 다면적 사유…사람 중심의 예술 담아낸 다중적 의미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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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못에 관한 다면적 사유…사람 중심의 예술 담아낸 다중적 의미의 '못'

[나의 신작 연대기(28)] 설자영 안무·연출 창단 공연 '못'(M.O.T : Moment Of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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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서로가 주인공이 되는 열린 공간에서/ 푸르름 넘치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잊고 싶었던 과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조용히 뚜껑을 열면 소복이 쌓인 상처가 밀봉돼 있다/ 비밀의 상자는 하나의 형상으로 응축한 ‘못’을 화두로 던진다/ 무리는 상처를 주었지만, 이윽고 보듬어 주었다/ 여유를 찾을 틈 없이 흘러온 세월/ 뾰족한 못 하나가 ‘터트림과 아묾’의 이치를 깨우친다/ 무리에서 벗어나 진실의 순간을 마주할 때/ 나는 ‘생의 찬가’가 퍼지는 들판을 마주한다/ 짙어지는 흰색 틈새로 마주할 색깔은 녹색이리라

위기·두려움 극복하는 과정 몸짓 하나하나로 오롯이 표현


2월 23일(금) 여덟 시, 24일(토) 다섯 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Suljayoung Arts Group(설자영 아츠 그룹, 예술감독 설자영) 주최·주관, 설자영(선화예고 무용부장) 안무·연출의 '못'(M.O.T: Moment Of Truth)이 공연됐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진실의 독해는 반가사유상의 여유를 견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무리는 꽃잎이 서로 겹쳐 있는 장미의 모습이었다. 긴 강을 넘어선 자들은 허기진 배들을 미소로 채웠다. 길은 멀었고, 모실 스승은 넘쳤다. 비릿한 실체는 아픔을 동반한 사유의 연못이 됐다가 상처를 남기는 못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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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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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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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설자영 아츠 그룹의 창단 공연 '못'은 진실을 대면하기 전에 겪는 갈등, 그 위기와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끝내 이룬 밭고랑에는 보랏빛 구름으로 피어난 자운영(紫雲英)이 넘실대고 있었다. 무음이었다가 느린 저음이 차지하는 영역은 해탈의 전조(前兆)였다. 안무자 설자영은 '못'을 통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술,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술’의 신념과 가치를 담아낸다. 주체와 객체 사이에 세월이 걸리고, 바람은 움직임을 부른다. 이미지 확장으로 목각 인형과 못의 상징인 대형 기둥 사용이 이채롭다.

안무가 설자영은 ‘못’의 다중적 의미를 활용해 작품을 전개한다. '못'은 4장으로 구성된다. 장(場)을 이동하면서 안무가의 심상(心象)에서 1장의 못은 연못(pond), 2장의 못은 도구로서의 못(tool), 3장의 못은 상처의 못(wound), 4장의 못은 진실의 못(truth)이다. ‘못’은 주제적 상징이며, 안무가는 이를 마음의 본질을 찾아가는 솔직한 감정과 상태, 진솔한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이 시대에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극을 희극으로 환치(換置)하고자 하는 심성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등불을 빌려오듯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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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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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못'은 안무가의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한 시간 분량의 한국 창작무용은 은밀한 비밀이 감도는 탄성을 유지하면서 완급의 움직임으로 빛나는 광휘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무대 디자이너 이종영은 제목의 이미지와 주제적 이미지를 통합하여 디젤 엔진의 힘찬 모습을 연상시키는 통나무 기둥을 운용한다. 조명디자이너 김철희는 시종 진지함으로 상업용 조명과 차별화되는 조명으로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에 이바지했다. 음악감독 김문고의 음악은 작곡과 악기 편성으로 감정의 흐름에 조응하며 신비감을 조성했다.

독창적 아이디어·촘촘한 구성진솔한 움 직임으로 풀어내


상상의 연원(淵源)은 인간적 삶의 단순성 때문에 복잡다단한 묘사는 우회된다. 추상화적 전개에 인과응보(nemesis), 신의 정의(dike), 분노의 여인들(Erinyes) 같은 거창함은 생략된다. 1장: 마음속 깊은 곳, 투명했던 연못에 차츰 어둠이 드리워져 마음을 가둔다. 2장: 마음을 뚫고 박히는 못. 누군가의 말과 짓, 누구를 위한 못이었나. 3장: 못 박힌 마음 때문에 상처는 짙어진다. 아픔은 인생이 던지는 질문이다. 4장: 진실의 순간: 세상을 향해 박혀있는 부정의 못을 빼는 순간, 만나게 되는 진실의 못은 작지만 고요하고 맑고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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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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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설자영 설자영아츠그룹 예술감독이미지 확대보기
설자영 설자영아츠그룹 예술감독


‘설자영 아츠 그룹’은 무진년 정월대보름을 맞아 예술을 통한 사람 사이의 ‘마음의 합일’을 주창한다. 설자영은 진정한 예술과 교육의 의미를 알고자 노력해 왔다. 그녀는 자기 작품 '못'에서 출연자(선은지, 이고운, 백승민, 손무경, 선승훈, 박혜리, 노연택, 이하윤, 오민주, 신현진, 이채연) 모두를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로 만들었다. 이 단(團)은 예술로 사람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못'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술’을 증거하는 결기의 작품이다.

정월대보름을 빛낸 걸작 호평…무대디자인, 역동적 모습 연출


설자영은 춤 예술 주변에 가지를 치고 있던 유혹을 물리치고 도덕적 책무를 수행해 왔다. 그래서 그의 삶과 안무작은 간단명료하다. 그녀는 대한무용협회 이사, 한국춤협회 이사, 전통춤협회 이사, 우리춤협회 상임이사로서 대외 활동을 맡고 있다. 그녀의 안무작은 '하나되어 피어나는 우리', '너머의 시간 ­ 마주하다', '레퍼토리로 보는 한국춤 교육적 가치 찾기 전통에서 한국 창작춤까지' 등이 있다. 그녀는 행복을 자동으로 발전시키는 순간의 원리를 가동한다. 빠른 소외의 비극을 내보내고 무리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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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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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진실로 가는 길’에 ‘언제나 늘’ ‘젊음과 아름다움’이 미경험의 토양에 깊게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진심이 출장 중인 곳을 불신이 찾아오고 오해와 불신이 자리 잡았다. 풍진세상의 먼지를 털어내야 보이는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주장은 ‘보다 나은 춤이 보다 나은 관객을 만들고 보다 나은 사회(Better Dance, Better Audience, Better Society)’를 만드는 이치다. 엄숙한 경건함이 두드러지는 것을 우회하는 아이러니와 풍자적 움직임이 가미된다. 진실은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고, 끝내 함께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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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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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영 안무 및 연출의 '못'


설자영에게 춤은 삶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나누는 전통시장(Haat) 같은 것이다. 춤에 대한 정성이 진심에 닿는 길이라 여긴다. 그녀의 '못' 작업은 지식과 경험의 축적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지시켜 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못'은 후반부에 들어서 잎과 뿌리가 생략된 나무 기둥이 다양한 공간과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못이 될 수도 있었고, 안무자를 상징하는 세트로 기능한다. '못'은 독창적 아이디어에 촘촘한 구성으로 정월대보름을 빛낸 걸작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