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연설이다. 파월(71) 연준 의장은 한국시간 23일 새벽에 기조연설을 한다. 기조연설은 잭슨홀 미팅의 하이라이트다. 이번 연설의 주제는 'Reassessing the Effectiveness and Transmission of Monetary Policy', 우리말로 번역하면 '통화정책의 전달과 효율성에 관한 재평가'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준 의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에 따라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또 환율과 증시 등 금융시장에 큰 변동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계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파월이 말문을 열기도 전에 뉴욕증시 등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잭슨홀 미팅에서 판을 바꿀 만한 메가톤급 메시지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파월은 2022년 8월 26일 연설에서 “가계와 기업에 어느 정도 고통을 가져오겠지만 물가가 통제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뉴욕증시는 파월이 물가가 안정 조짐을 보이면서 작년 들어 금리를 4차례나 올려온 연준이 ‘상황을 보고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파월이 “금리를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잭슨홀 미팅에서의 ‘폭탄 발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들썩이던 2007년 미팅에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 발언 후 연준은 이듬해 전면적 양적 완화(통화량 증가)에 나섰다. 버냉키의 그 유명한 양적 완화(QE) 발언도 잭슨홀 미팅에서 나왔다. ‘헬리콥터 벤’으로 불린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2007년과 2010년, 2012년 미팅 때 양적 완화 방침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돈을 직접 푸는 양적 완화는 인류 역사상 이때 처음 언급됐고 이후 미국 연준과 일본은행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2016년 잭슨홀 미팅에서는 재닛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이 “금리인상 여건이 마련됐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4개월 뒤 연준은 금리를 올렸다. 2005년 미팅에서 “미국 경제는 거품 상태”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경고한 라구람 라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현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이후 스타덤에 올랐다. 2년 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고 그 여파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기 때문이다.
파월이 올해 상당히 비둘기파적인 신호를 낼 것으로 시장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히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는 만큼 금리인하의 본격적인 메시지를 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잭슨홀 미팅은 원래 1978년부터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등에서 미팅을 열다가 1982년 잭슨홀로 장소를 바꾸었다. 미국의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며 인하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장 분위기 속에 파월 의장의 발언에 따라 변동성이 다시 한번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파월 의장이 금리인하 폭에 대해 말을 아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의 기대가 높은 만큼 파월 의장이 금리인하에 소극적이거나 유보적인 발언을 할 경우 뉴욕증시가 또 한번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미국 뉴욕증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9월 0.25%포인트와 0.5%포인트 금리인하 전망이 각각 73.5%, 26.5%다. 연말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0.75%포인트(0.25%씩 3차례), 1.0%포인트 낮을 것으로 보는 견해는 각각 42.5%, 42.2%를 기록 중이다.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이 이 기대를 초과하느냐 아니면 미달하느냐가 최대의 관심 포인트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9월 18일 금리 결정 전에 고용보고서 발표 등이 예정된 점을 근거로 파월 의장이 이번에 금리인하 폭에 대한 신호를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잭슨홀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국립공원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로키산맥의 지류인 티턴산맥의 해발 2000m 고산 지대에 자리한 거대한 골짜기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미국 와이오밍주와 아이다호주의 경계 근처에 있다. 첩첩산중의 산동네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매년 여름 이곳에서 통화금융정책회의를 연다. 이름하여 잭슨홀 미팅이다.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QE) 또는 금리인상과 양적 축소(QT) 등 연준의 주요한 통화금융정책 방향이 이 회의에서 논의된다.
잭슨홀 골짜기 바로 뒤에는 만년설이 뒤덮인 티턴산이 자리하고 있다. 티턴산은 미국 와이오밍주 서북부와 아이다호 동남부에 걸친 거대한 산으로 유명한 로키산맥의 일부다. 티턴산의 최고봉은 해발 고도 4196m다. 잭슨홀 미팅이 이 티턴산 아래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금융계 일각에서는 잭슨홀 미팅에서의 연준 의장 기조연설을 '티턴산의 계시'라고도 한다.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세계 금융시장의 방향을 바꿔온 강력한 주문이라는 뜻이다. 그 신탁이 내리는 곳이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 국립공원의 잭슨홀이다.
올해 티턴산의 잭슨홀 미팅에서는 과연 어떤 계시가 나올 것인지 세계는 지금 제롬 파월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