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500 창업주 열전] JP모건 존 피아폰트 모건 ① 피바디 은행에서 출발, 독일어와 프랑스어 능통

기사입력 : 2015-09-16 00:02 (최종수정 2017-02-0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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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 500 창업주 열전 JP모건 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당시 JP모건 빌딩 앞 시위.

[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김대호 소장]
JP모건체이스 그룹의 상호 앞부분에 나오는 ‘JP모건’은 존 피어폰트 모건이라는 사람의 이름이다.

영어 원문으로는 John Pierpont Morgan이다.

숱한 흡수 합병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도 JP모건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그의 공로가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JP모건체이스 그룹은 지금도 JP 모건을 창업주로 간주하고 있다.

존 피어폰트 모간은 1837년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원래 조상은 앵글로색슨으로 영국 웨일스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다.

유대인으로 아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렇지는 않다.

할아버지 때부터 금융업으로 큰돈을 모았다.

아버지인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 대에 와서는 미국 금융계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아버지는 아들 JP모간의 교육에 특히 열정적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최고명문 자제만 다닐 수 있었던 채셔 아카데미를 보냈다.

또 졸업후에는 당시 학문의 중심이던 졸업시킨 뒤 유럽으로 유학을 시켰다.

독일 괴팅겐 대학과 스위스 대학 등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JP모건은 그 유학을 통해 유럽의 문화와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독일어와 프랑스어 등에 능통한 인재로 거듭났다.

이러한 글로벌 경력 그리고 어학실력은 모간이 훗날 전 세계를 상대로 금융업을 확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학업을 마친 JP는 아버지가 간부로 재직하고 있던 영국 런던의 한 은행에 취업했다.

그 곳이 바로 피바디 은행이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의 멤버로 알려진 조지 피바디가 런던에 세운 상업은행이다.

그즈음 한창이던 미국 철도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던 은행이다.

JP의 아버지가 이 곳의 선임 파트너였다.

이후 피바디는 이 은행의 주식을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에게 팔았다.

모건은 이 회사를 인수한 후 이름을 자신의 퍼스트 네임을 따 ‘JS모건’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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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 500 창업주 열전 JP모건 편,



김대호 경제연구소 소장 겸 대기자/경제학 박사 tiger8280@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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