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앨런과 빌 게이츠는 그로부터 7년 전인 1968년 처음 만났다. 무대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귀족 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서였다. 그해 13세이던 빌 게이츠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신입생으로 입학하면서 3년 선배인 폴 앨런과 조우한 것. 레이크사이드 스쿨은 중고 6년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학교다.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중1과 고1의 만남이었다.
이 둘이 특히 가까워진 것은 컴퓨터 때문이다. 학교 육성회가 바자회를 열어 모은 돈으로 컴퓨터 단말기와 제너럴일렉트릭(GE)의 메인프레임에 연결해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사 주었다. 당시 일반인들은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 기계였다. 부자학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의 명령을 수행해 주는 이 신비의 기계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앨런과 게이츠는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MS가 만들어진다. MS 초기 멤버들 중 상당수가 레이크사이드 스쿨에서 함께 컴퓨터를 만지던 동료들이다.
앨런과 게이츠는 가지고 노는 정도를 넘어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 유명한 ‘틱택토’란 게임은 당시 이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 만든 것이다. 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회사까지 차렸다. 회사이름은 트래프 오 데이터(TRAF-O-DATA)다. 일반 기업이나 단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래밍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학창시절 이미 수 만 달러를 벌었다.
그러던 차에 앨런이 알테어 8800 출시를 보고 게이츠에게 공동 창업을 제안한 것이다. 게이츠는 학업 중이란 이유로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남들이 먼저 치고 나가면 닭 쫒던 개꼴이 되고 말 것’이라는 앨런의 집요한 권유에 넘어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기에까지 이른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하버드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이후 계속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다시는 컴백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영영 중퇴생으로 남게 됐다.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는 앨런이 단연 당대 최고였다. 게이츠는 기술의 방향과 판세를 읽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회사를 설립할 때 둘의 출자 비율은 50대 50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게이츠의 우세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게이츠는 회사에 공을 세우면 그 대가로 돈 대신 지분을 더 갖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오로지 일에만 파묻혀 있던 앨런은 개발의 성과를 내고도 지분을 추가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앨런이 돌연 병에 걸렸다. 일종의 혈액암인 호지킨병을 얻은 것. 게이츠는 앨런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되자 하버드대 시절 포커 친구인 스티브 팔머를 영입해왔다.
앨런이 일을 못해 회사가 어렵게 되었다면서 그 지분의 상당액을 팔머에게 넘겨주겠다고 은밀히 제안했다. 이 대화를 앨런이 우연히 듣게 된다. 친구의 투병에 동정은커녕 지분을 빼앗아 내려는 음모를 꾸미는 게이츠의 처사에 큰 실망을 하게 된다. 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에도 앨런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훗날 앨런은 그의 자서전 아이디어에서 ‘게이츠는 돈만 아는 냉혈한’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둘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새로 영입한 팔머와 게이츠의 사이도 좋지 못했다. 지위와 권한을 둘러싸고 계속 다투다 결국은 결별했다. 세 명의 창업 주역들은 그렇게 헤어져 각자 딴 길을 가고 있다.
김대호 경제연구소 소장 겸 대기자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