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긴 꼬리를 남기고 흩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깊이감을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뒷모습을 그릴 때, 달의 앞모습으로 다가오는 여인, 화음(禾音) 안정규는 밤마다 달바퀴가 둥근(不識氷輪夜夜圓) 이치를 들고 데뷔전을 갖는다. 인생의 나이테를 한 바퀴 돌아서야 수레바퀴 아래 자신이 있었음을, 그것도 소박한 빛깔과 겸손함으로 자신의 그간 작업을 알린다.
서예가의 삶, 그것은 올곧은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녀는 어지러운 세상의 균형추 역할과 중심을 잡아나가는 노력은 신사임당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홉 해의 어린 시절을 동문수학하면서 지켜본 정규, 서예가로서 화음(禾音)은 앞서는 부러워하지 않았고, 느린 걸음으로 글자마다 기교가 아닌 정신을 집어넣으려고 애쓰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도덕적 전범(典範)을 수용해왔다.
화음(禾音)은 자신의 최초 서예 개인展에 주제가 담긴 제목 자체도 담아내지 않았다. 겸손의 극치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바보群에 속한다. 숨 가쁘게 눈치 보며 줄타기를 하지 않았고, 타인의 빛에 자신을 무임승차시키지도 않았다. 모양, 크기, 체를 달리한 그녀의 서예 변주 속에 간결한 핵(核)으로 자신의 자세를 담았고, 동참의 서(敍)로 의지를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과 그 고장 사람들의 정서를 닮은 글들을 진설(陳設)하였다. 작은 산들이 에워 싼 마을, 햇살 좋은 빛을 받아 부드러운 흙에서 커온 곡식을 살찌게 하는 곳, 술이라도 빚으면 금세 시가 나올법한 느낌이다. 그녀의 예작(藝作)에는 공간 구성과 필묵법에서 스승의 애정과 영향이 스며들어 있고, 빠른 바람이 지나가도록 배려한 흔적이 숨어 있다.
흔히 접해온 글귀에는 ‘체’의 구성으로 식상함을 우회했고, 시문에는 문향이 우려 나오도록 노력한 정성이 엿보인다. 같은 듯, 다른 그녀의 손놀림으로 쓴 글들은 손열음과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와 같은 감동과 열정이 숨어있다. 창작 정신과 기교를 보여주는 종이 선택, 전지의 가감, 가로 및 세로의 배치, 다양한 체, 글자 크기의 구성은 흥미롭다.
그녀는 수묵의 그윽함 속에 색지와 물감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고, 오래된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자신의 한시 창작 능력을 감추고, 화음(禾音)이 고전과 좋아하는 글에서 가져온 서예 글에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살아가면서 위로가 되는 글’, ‘행복한 동행’, ‘고전에서 찾은 위안’ 정도로 표현될 것 같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