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서기 흠명기 기록(흠명5년)을 인용하여 안라국을 '아라가야'와 동일시 하였다. 그 시기에 아라가야는 이미 신라에 멸망되고 사라졌다.
왜 왕권과 안라와의 관계는 종속적 동맹관계에서 진일보한 종속형태였으며, 6세기에 30여년 동안 백제와 안라(安羅)는 왜국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아직 '일본'이란 명칭도, '부'(府)라는 제도도 없던 흠명천황(欽明天皇) 재위 기간(539~571)에 아라가야(안라국·함안)에 있던 가야와 왜의 외교·무역관리 기관에 '임나일본부'라는 가상의 명칭을 자의적으로 부여하였다.
안라국만의 독특한 무덤양식으로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안라국(아라가야) 만의 독특한 무덤축조기법이 유물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알고 있던 감실(龕室)을 들보시설로 재해석한 결과다.
여러 철기 부장품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의 말갑옷이 수습되어 5세기초 대고구려전을 수행했던 안라국 왕자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비롯 고구려군에 패퇴했다고는 하나 가야 연합군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