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에 관한 우울한 명상…박명숙 안무의 '流浪'

기사입력 : 2017-08-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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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미친 듯한 그림이 춤추는 팔월 한가운데/ 소금꽃 내려 계절을 닫았다/ 형벌같이 떠돌던 세월 너머/ 눈물 속에 껴안은 황무지/ 까레이스키들은 흐느낌으로 울어야했다.// 두려움으로 만났던 카자흐, 우즈벡/ 봇짐도 못 풀고/ 숨죽여 거친 땅 일구면서/ 춤추고 그림을 그렸다/ 대중가요가 클래식 음악이 될 때까지 무수한 손톱이 부러져 나갔다/ 디아스포라, 화가 ‘니콜라이 신’도 그런 어둠의 땅을 물려받았다. //진혼의 촛농을 두 손으로 받아내며/ 울면서 울면서/ 빛이 되소서, 꿈이 되소서/ 기도했었다.

화가 신순남(申順南, 니콜라이 신)이 던진 울림,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신순남 展’에서 모티브를 얻은 『유랑』은 현대무용가 박명숙(현 경희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에게 토스되었고, 그녀는 ‘레퀴엠-한민족유민사’의 춤 버전을 완성시켰다. 이 작품의 주조색은 까레이스키안 블루, 우울은 먹빛으로 번지고, 기타 선율이 잊힌 과거를 현재에 이식한다. 소금꽃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진혼(鎭魂)은 처절한 모습이었다.

2017년 7월 7일(금), 여덟시, 8일(토) 여섯 시 두 차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된 현대무용단 박명숙댄스씨어터(Myungsook Park Dance Theatre)의 『유랑: 流浪, Journey into Shadowland, 70분』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정착기를 청색, 적색, 백색 연대기에 담는다. 전통적 미의식을 숭상하고 현대적 금오신화(今悟信和)로의 조화를 꽤하며 꾸려진 시대적 참혹상은 주제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낸 채, 관객과의 거대한 소통의 담론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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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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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동포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여러 나라를 해마다 투어 해야 할 만큼의 예술적 무게감을 소지한 이 작품은 1999년 12월,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문예회관대극장 재공연(2001), 일본 아오야마 극장(2002), 하바롭스크 오드라 극장(2002), 호주 디킨대학교 극장(2005), 예술의전당 토월극장(2008),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2015), 갈라 공연을 거친 『유랑』(2017)은 열여덟이라는 나이테를 두른다.

아홉 개의 시퀀스로 구성된 작품은 히브리민족의 수난 같은 삶의 여정을 극복해낸 구소련 거주 한민족의 생명력을 서사적 무대언어로 표현한다. 유민(流民), 어두운 습지에 눈물로 핀 소금꽃은 영롱하게 빛나건만 고향은 지리멸렬을 보인다. 악사가 ‘나그네의 설움’을 기타로 연주하면서 유민들의 애환을 기억해내며 위로한다. 영사막(샤막)에 스며드는 유랑의 역사, ‘땅’이 주는 거룩한 의미를 상기시키면서 기차에 몸을 실은 수난의 여정이 시작된다.

연해주 한민족 추방의 역사는 제1장: 프롤로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Searching for lost time), 제2장 : 전조(前兆) - 길 위의 나날들(Presage / Days on the road), 제3장 : 월경(越境) - 거친 바람 속에서(Cross the border / Into the tough wind), 제4장 : 이방(異邦) - 낯선 곳의 아침(Alien Country / Morning in strange place), 제5장 : 정박(碇泊) - 고난의 땅에 닻을 내리다(Anchoring in the land of hardship), 제6장 : 별리(別離) -둥지를 잃은 사람들(Parting / People who lose the nest), 제7장 : 진혼(鎭魂) - 죽은 자는 머물고, 산자는 떠나게 하라(Requiem / Make the dead stay and the alive leave), 제8장 : 망가(望歌) - 저 넓은 바다위에 한 마리 새가 되어(Song of desire / Be a bird over the limitless ocean), 제9장 :에필로그 : 유랑(流浪)(Journey into shadowland)에 걸쳐있다.

독일 첼로밴드 살타 첼로(Saltacello)가 연주했던 ‘나그네 설움’(Dawn Chorus) ‘아리랑 낭낭’ ‘꽃마차’ ‘눈물젖은 두만강’ 블라디미르 임의 ‘들’ 같은 대중음악,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발라네스쿠 4중주단(Balanescu Quartet)의 ‘Turning Wheels, 회전바퀴’, 옥길성 창작곡 ‘Journey into Shadowland, 유랑’, 송형익 창작곡 ‘즉흥연주곡’, ‘고구려의 기상’ 같은 현대 클래식이 어울려 사실감과 생동감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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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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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流浪』(유랑, 2017)은 추상미 지양, 극성 강화의 다양한 영상, 상징성 강화로 현대무용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지식인층이 총살당한 뒤 이어지진 삼십여 만 명의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죽음을 목도하면서, 한 달 만에 도착한 곳은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였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고려인들은 육십여 년 동안 일군 땅을 빼앗기고 그들이 떠나왔던 연해주로 육천여㎞ 길을 다시 유랑해야 했다.

『유랑』은 빛・어둠・숲・나무・흙 등의 자연을 포착한 영상, 조명 기술의 도움으로 수직(숲・나무)과 수평(눈 덮인 대지・강) 등의 대립적 요소들을 충돌 또는 조화시켜 긴장감을 유지한다. 열린 공간으로 설정된 무대는 여백미와 유연성을 살린 공간분할로 입체성을 살린다. 투사 영상은 삶과 죽음, 환희와 절망을 병치시켰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성은 형상화되고, 무용수는 배경에 용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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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영상의 놀라운 앙상블, 신순남의 역사화 ‘진혼곡’ 사이로 스며드는 촛불은 ‘본능이나 다름없는’ 삶과 ‘수없이 죽어간’ 죽음을 상기시킨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동양版이거나 뭉크의 ‘절규’ 위에 얹히는 ‘히브리노예의 합창’ 보다 장엄한 엄숙이 결연히 자리를 비집고 들어선다. 장면 변화에 따른 선 중심의 흑백 그래픽이 유동하고, 사운드 변화에 영상이 동기화되는 소리의 비주얼화가 이루어진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민족, 샤막이 열고 닫히면서 고통과 상흔이 ‘나그네 설움’의 기타 연주에 담긴다. 미지로 떠나는 흑백 열차가 역사성을 부여하는 영상으로 비치고, ‘아리랑 낭낭’, ‘꽃마차’가 이어진다. ‘길떠나는 가족들‘의 숨 가빴던 상황을 보여주는 봇짐에 다양한 의상들, 낯선 곳에 다다랐음을 상징하는 장대 같은 나무가 들어서고, 우리 편이 아닌 모래바람이 유랑의 존재를 침화(沈化)시킨다.

『유랑』의 기본 색은 창백한 블루이다.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셔레이드 효과, 지속적 사이렌 소리는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탐조등은 철조망 위를 분주히 오간다. 분주함을 따라 무용수들도 움직임도 바쁘다. 샤막이 다시 열리면 사운드는 현대 리듬을 차고 거친 바람을 토한다. 차가운 백색 질감의 서리・얼음으로 다가오는 추상, 영상은 다시 달리는 기차를 보여준다.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뜨거운 생존의 역사가 쓰여 진다.

알 수 없는 언어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에 풀꺾인 사람들, 영상은 추상으로 피어나고, 열 넷 무용수들의 견고한 틀은 지속적 움직임을 보이다가 전신을 떤다. 붉은 감시에서 차가운 블루에 이르는 땅, 비트 음악, 붉은 빛이 도는 스탈린 얼굴로 변하는 영상, 창백한 화이트가 내려앉는다. 장면 분할은 심화되고 쓰러진 사람들 위로 떨어진 타악은 전통장단을 차용한다. 바람・뱃고동・벌레 등 복합사운드를 앞세우고 고난의 땅에 사람들은 또 둥지를 튼다.

아코디언 반주의 녹음음악, 다시 서러움으로 다가오는 여가수의 ‘눈물젖은 두만강’이 흐르고, 달 조형물이 내려온다. 느리게 날카롭게 이어지는 현의 울림을 타고 배경영상이 회전을 한다. 무용수들이 확장되고, 움직임에는 변화가 인다. 영상의 선은 자작나무 숲을 닮아간다. 바닥의 문양은 전통을 닮고 블루로 진입한다. 살아 온 터전을 잃고 둥지를 떠나는 그들, 얼마나 많은 죽음이 기다릴지 불안감이 인다.

둔탁한 건반, 날리는 눈꽃을 맞으며 봇짐 진 가족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유랑의 길을 떠난다. 현대가 과거를 보다 듬고, 통일감과 조화를 이룬 개인의 기량은 작품을 격상시킨다. 기타 연주가 다시 이어진다. 남성 중심의 오인무는 역경을 이겨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녹음곡 ‘눈물젖은 두만강’은 유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곡이다. 남녀 이인무는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으로 다시 서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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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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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流浪'

반복되는 바람소리, 조형의 달은 올라가고, 그랜드 피아노 사운드는 ‘진혼’ 의식을 인도한다. 영상은 신순남의 그림‘레퀴엠’ 사이의 꺼질 듯한 촛불에 집중한다. 곳곳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바닥에 켜지는 사각 조명의 선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의식에 동참한다. 유랑은 ‘나라가 힘이 없어 생긴 일’, 깊은 슬픔이 번진다. 산 자들의 자양분, 촛불은 살아남는다. 통곡의 상징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들이다. 솔로는 혼절에 이른다.

봇짐은 유랑의 상징이다. 선율은 차가운 시절의 기억을 담는다. 시작을 떠올리는 캘러그래피는 ‘流浪’을 써낸다. 살아남은 자는 희망을 품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붉은 빛이 사라지고 하얀 소금꽃이 피고, 사람들이 하나씩 쓰러져 간다. 기차 영상이 유랑의 의미를 새기면서 수미쌍관의 묘를 보여준다. 다시 모여드는 사람들 위로 영혼을 기리는 꽃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流浪』(유랑)은 박명숙을 떠올리는 대표 레퍼토리 중의 하나이다. 역사경험의 오지(奧地)에 대한 탐사는 풍부한 상상력과 차가운 이성, 문화인류학적 사실(事實)로 증명해내는 기교를 보여준다. 공연의 전반적 흐름, 반복된 강박적 움직임, 이상적 조합은 ‘유랑’의 정황과 정묘한 틀을 맞춘다. 안무가는 작품의 내용과 특성에서 민족 정서를 대폭 수용하면서 현대무용과 상생하는 조화를 이루어낸다. 한민족의 애환을 총체적으로 담은 『流浪』은 거듭된 공연에도 불구하고 숙성의 깊이와 새로움 으로 다가오는 현대무용의 걸작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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