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① 존 메이나드 케인스 …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론의 뿌리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주필

기사입력 : 2017-09-06 08:15 (최종수정 2017-09-1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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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경제이야기] 경제학자와의 대화… 케인스 유효수요론 vs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론...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SBS CNBC 한경와우TV 등에서 기자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주필 편집인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중국 인민대 등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독자 전화 010 2500 2230)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지금으로부터 88년 전인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역사상 최대 폭의 하락이었다. 이 날이 목요일이었던 점을 상기하여 월가에서는 지금도 검은 목요일’로 부르고 있다. 한 번 시작된 주가 폭락은 좀체 수습되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1933년까지 무려 4년 동안 폭락 장세가 이어졌다.

증시 폭락은 급기야 금융기관들의 연쇄 파산을 야기했다. 이는 또 실물경제의 붕괴로 까지 이어졌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역사상 최악의 ‘대공황’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공황은 실로 처참했다. 미국 근로자의 절반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다. 끼니를 제때 때우지 못해 죽어가는 아사자들이 속출했다. 경제적 고통으로 무너져가던 당시의 미국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는 바로 이 때 상황을 토대로 한 것이다.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까지 이어진다. 경제 운영의 실패로 전 인류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 아비규환의 고통을 겪었다.

경제학자들은 도무지 대공황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1920년대 세계는 엄청난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 증에서도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세이의 법칙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세이의 법칙이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로 표현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이가 1822년에 주창한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저절로 창출하는 만큼 생산력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이 세이의 법칙에 따라 모두들 공급확대에 올 인하고 있었다. 그 결과 산업혁명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력을 늘려가고 있었다. 세이의 법칙대로라면 생산한 것은 모두 팔려 나가야 한다.

무슨 사연인지 어느 순간부터 생산을 아무리 늘려도 팔리지 않았다. 기업에는 재고가 쌓여만 갔다. 전 세계가 공황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지만 경제학자들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처방은커녕 공황의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때 케인스라는 학자가 나타났다. 풀 네임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 1883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케인스는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뒤 한동안 공직에 투신했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청에서 근무하다가 모교로 돌아와 교수가 됐다. 한계효용론을 설파한 앨프레드 마셜과 후생경제학의 창시자 피구와 함께 케임브리지 학파 3인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원인을 수요부족에서 찾았다. 상품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내도 사줄 수요가 없으면 마비될 수밖에 다는 분석이었다. 이른바 유효수요 부족을 대공황의 핵심 요인으로 본 것이다. 케인스는 유효수요 증대 방안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가 재정자금을 풀어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으로 소비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것 이었다.

오랫동안 세이의 법칙에 물들어왔던 기성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영국 경제학계는 공급 대신 수요를 더 중시하는 케인스를 이단아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장기적으로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 것이란 경제학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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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경제이야기] 경제학자와의 대화… 케인스 유효수요론 vs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론...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SBS CNBC 한경와우TV 등에서 기자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주필 편집인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중국 인민대 등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독자 전화 010 2500 2230)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적 관점에서 볼 때 경제를 정부에 맡기자는 케인스의 생각은 적어도 당시로서는 분명 ‘이단’이었다.

케인스의 가치를 알아본 곳은 대서양 바다 건너 미국이었다. 대공황의 한 와중에 대통령에 오른 루스벨트는 1933년 취임과 함께 뉴딜정책을 폈다. 정부 돈을 풀어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그 유명한 테네시 강 개발공사도 실업자들에게 돈 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늘려 그 돈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보자는 구상이었다. 케인스 경제이론을 실제 경제정책으로 옮긴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이 대공황 극복에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케인스를 따르는 이른바 케인지언들은 케인스 경제학 덕분에 세계가 대공황에서 헤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왈츠는 케인스의 잘못된 처방으로 공황의 지속기간만 더 늘렸을 뿐 이라며 혹평을 하고 있다. 통화주의자들은 또 케인스 식의 정부 개입이 시장을 왜곡시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들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도 케인스와 전혀 다른 분석을 하고 있다. 갑작스런 은행예금 인출 때문에 대공황이 야기된 것이라면서 극복방안으로 금융시스템 개혁을 주장했다. 루스벨트는 이들의 주장도 받아들여 연방은행 제도를 혁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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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경제이야기] 경제학자와의 대화… 케인스 유효수요론 vs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론...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SBS CNBC 한경와우TV 등에서 기자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주필 편집인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중국 인민대 등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독자 전화 010 2500 2230)


미국 발 세계 대공황이 뉴딜정책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됐다. 세계 대공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2차 대전 이후이다. 누구 덕에 대공황이 극복되어는 지 그 공과를 정확하게 가려내기도 사실상 불가능 하다.

중요한 것은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스 경제학이 이단아에서 주류 경제학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수요는 연구의 대상아 아니었다. 그러나 케인스의 유효수요론 이후 오늘날 현대 경제학은 공급과 함께 수요도 경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고 그로 인한 경제학의 정확도가 훨씬 높아졌다.

케인스는 또 미시의 세계에 갇혀있던 경제학을 거시의 세계로 까지 끌어올렸다. 물가와 성장 그리고 국제수지 등 모든 경제현상을 입체적으로 다루면서 경제정책을 펴나가는 이른바 거시경제는 케인스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케인스는 현대 경제학의 중시조로도 불린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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