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②] 헨리 조지… 토지공개념과 부동산 보유세 이론적 모델

기사입력 : 2017-09-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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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② 토지 공개념의 시조, 헨리 조지… 부동산 보유세 이론적 모델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경와우TV 글로벌이코노믹 등을 거치면서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전화 010 2500 2230)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대학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미국의 대륙 횡단 열차는 1869년 처음 생겨났다. 금의 발견으로 골드러시가 일어난 지 20년 되던 해이다. 그 해 5월10일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역사가 마침내 마무리 됐다.

뉴욕의 한 허름한 인쇄소에서 활자 뽑는 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가던 헨리 조지는 새로 뚫린 대륙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금을 한번 캐보자는 청운의 꿈을 꾼 것이다.

헨리 조지는 1830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네 인근의 성공회 교회 학교를 다니다가 중2로 중퇴한 것이 한평생 학력의 전부다.

먹고 살기 위해 15살 때부터 배를 탔다. 미국과 인도를 오가는 원양 선에서 말단 선원노릇을 했다. 그나마도 도중에 해고된 이후 식자공으로 겨우 연명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륙횡단철도 개통소식을 듣고 서부 행을 결행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도전은 녹록치 않았다. 금을 캐고 싶어도 땅이 없었다. 적은 밑천으로는 광산에 접근조차 힘들었다. 될성부른 땅은 대부분 소수의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운 좋게 금을 캐내도 지주에게 임대료를 내고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철도가 뚫린 이후 땅값은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철도역이 들어선 이른바 역세권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헨리 조지는 결국 금 대박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 캘리포니아에서도 다시 인쇄공으로 취업한다.

우여곡절 끝에 한 인쇄소를 인수하게 된다. 그 인쇄소 시설을 토대로 187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언론사업을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이브닝 포스트’이라는 자그마한 로컬 신문이다. 이 신문에서 발행인 겸 기자로 활약했다.

주 관심분야는 경제이슈였다. 그 중에서도 토지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금을 찾아 대륙횡단철도를 탔던 수많은 서부개척자들의 꿈이 토지가격 상승 때문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처참한 현실을 특히 신랄하게 묘사했다.

헨리 조지는 신문 칼럼을 쓰면서 점차 경제사상가로 변해 갔다. 급기야 1891년에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펴내기에 이른다. 이 책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출간 첫 해에 무려 3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당시의 인구수를 감안할 때 실로 대단한 판매부수가 아닐 수 없다. 책만 많이 팔린 것이 아니라 ‘’진보와 가난‘ 출간 이후 헨리 조지는 일약 저명한 경제사상사의 반열에 올랐다.

진보와 가난에서 헨리 조지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 야기되는 본질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잇단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도래했으나 그 풍요 속에서 여전히 왔으나 가난하거나 이전보다 더 빈곤해진 계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자는 것이 가난과 진보라는 책을 쓰게 된 기본 취지였다.

헨리 조지는 그 책에서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구조적 모순의 원인이 바로 토지 지대에 있다고 갈파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제도와 기술의 발전으로 창출되는 수많은 부의 상당부문이 경제적 지대라는 이름으로 토지 소유자와 독점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절대 다수 대중은 더 가난해 질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이를 요즈음 경제학에서는 ‘렌트(rent) 부른다.

그 렌트 중에서도 헨리 조지는 특히 토지지대를 가장 나쁜 것으로 보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캘리포니아 골드시절 토지가격과 철도 개통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토지 지대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금광개발을 위해 대륙횡단철도를 놓았는데 철도개설 이후 땅값이 급격 오르는 바람에 인근 지주들만 황재를 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토지 지대 때문에 금광개발업자와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자본주의의 생리적 모순을 해결하기위해서는 땅에 대해서는 공개념을 도입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토지공개념 논의는 이 헨리 조지의 땅에 대한 핸 지대해소론 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은 토지가치세로 집약될 수 있다. 토지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거두어들이자는 것이다. 도지 가격이 오른 이유가 토지 소유자의 노력과는 무관하며 철도개통과 같은 외부효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 만큼 그 이익에 대해서는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세금은 전부 철폐하여 오로지 토지가치단일세 하나만으로 나라를 꾸려가자는 것이 헨리 조지의 구상이다.

땅값 급등의 폐해로 좌절해왔던 수많은 임차상인과 무산대중들은 토지가치단일세제 구상에 열광했다. 헨리 조지를 가난의 고리를 끊어 줄 메시아로 보는 사람들로 없지 않았다.

이를 당시에는 ‘조지스트’라고 불렀다. 그 조지시트들은 연합노동당으로 몰려들었다. 연합노동당을 통해 의회를 장악한 다음 토지가치세를 정식으로 입법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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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헨리 조지…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경와우TV 글로벌이코노믹 등을 거치면서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전화 010 2500 2230)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대학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헨리 조지는 1886년 연합노동당 공천으로 뉴욕에서 출마했다. 선거 결과는 근소한 패배였다. 조지 헨리의 구상은 미국에서는 끝내 현실화 되지 않았다.

조지 헨리를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학자로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공부를 거의 하지 많았고 선행 경제이론에 대한 조예도 부족했다.

그런 탓에 정통 주류 경제학 교과서에는 헨리 조지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가 주창한 토지가치세라는 개념을 소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제이론을 만든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경제사상가라는 쪽이 훨씬 더 합당할 것이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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