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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③ 버나드 맨더빌… 경제성장의 원천은 "이기심"

문재인 정부 J노믹스 소득주도 성장론은 "허구" 정부 개입=함께 망하는 길

기사입력 : 2017-09-21 08:12 (최종수정 2017-09-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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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경제사상 원류를 찾아서 ③ 버나드 맨더빌 편 …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경와우TV에서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전화 010 2500 2230)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대학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주필]
1714년 영국 런던에서 ‘꿀벌의 우화’ 라는 책이 나왔다.

영어로는 ‘The fable of the bees'이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버나드 맨더빌이 펴낸 책이다.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국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다. 당시로서는 실로 엄청난 부수였다.

이처럼 큰 관심을 끈 것은 책의 내용이 당시로서는 너무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방탕하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무척 잘 나가던 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 결국 모두 망하고 말았다는 대목이 특히 문제가 됐다.

영국 교회는 노발대발했다. 기독교적 도덕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꿀벌의 우화'를 금서로 지정했다. 닥치는 대로 불살라버린 교회도 적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분서갱유 식의 탄압이 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교회가 흥분하자 그 내용을 직접 읽어보려는 독자들이 급증한 셈이다.

맨더빌이 꿀벌의 우화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국가의 부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원천이 바로 개인의 사악한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당시 유럽은 중세로부터 이어져온 기독교적 도덕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세상이었다.

기독교적 선이란 곧 남을 위한 이타심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간 내면의 이기심은 최대한 억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이기심을 찬양하고 나섰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이웃을 위해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던 교회로서는 이기심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맨더빌의 주장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맨더빌이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표적은 당시 유럽대륙을 풍미하고 있던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란 중앙집권적 절대군주체제를 형성하면서 국가주도로 서로 국력 키우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금과 은이 국력의 상징이었다. 그 금과 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강제로라도 개방시켜 상품을 팔아야 했다.

필요하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함께 국력을 키운다는 명분 아래 각국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통제의 수단으로 도덕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이 맨더빌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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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의 경제사상 특별기획, 버나드 맨더빌 편이다. 꿀벌의 우화로드러난 맨드빌의 사상은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이 경제개발의 원천이라는것이다. 정부의 개입을 전제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맨더빌은 벌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국가에 의해 강제된 도덕의 위선의 실상과 그 폐해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각자의 이기심이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경제력 증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는 악덕이라는 이기적 욕심이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며 사치야말로 생산을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미덕이라고 역설했다.

맨더빌의 주장은 미덕과 악덕을 가르는 인간의 오랜 가치기준을 무너뜨렸다. 도덕주의자들은 격분했다. 맨더빌 이후 유럽은 선과 악의 진짜 기준은 무엇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고민이 중세 기족교적 선악관을 뛰어넘는 근대 유럽의 새로운 시민사회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 자양분이 됐다.

‘꿀벌의 우화’를 읽은 당대 사람들은 큰 쾌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세월 자신의 삶을 억눌러왔던 중상주의 사상과 교회의 권위에 대해 복수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맨더빌의 이러한 생각은 훗날 애덤 스미스로 이어진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국부론’에서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고 갈파한 바 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신의 이익’이 바로 맨더빌의 이기심을 승계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맨더빌이 쓴 ‘꿀벌의 우화’를 탐독했다. ‘국부론’의 영감도 맨더빌의 사상에서 배워온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라면 맨더빌은 아버지의 스승인 셈이다.

맨더빌의 사상은 또 불황의 경제학을 개척한 케인스로도 이어진다.

케인스 일반이론의 이론적 뿌리가 바로 맨더빌인 것이다.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서 착한 꿀벌왕국이 망한 가장 큰 이유로 소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오로지 저축만 미덕으로 간주하는 세상은 소비 부족으로 곧 무너지고 만다고 보았다. 아무리 상품을 잘 만들어내도 이를 사줄 유효수요가 없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맨더빌의 유효수요 사상은 당시에는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300여 년 후인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케인스는 맨더빌의 이론을 토대로 수요의 경제학이라는 새 장르를 만들어 냈다. 그 수요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케인스와 맨더빌 간에 차이가있다. 맨더빌은 수요도 이기심에 맡겨야 한다고 보는 데 반해 케인스는 한시적이지만 정부가 재정으로 메꿔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맨더빌은 당대에 자신의 경제학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라는 두 걸출한 경제학자를 배출해 내는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그러 면에서 진정한 경제학의 시조는 바로 맨더빌이 아닐까.


김대호 주필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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