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경제사상 원류를 찾아 ⑤ 중상주의 ... 프랑스 태양왕 루이14세 '짐이 곧 국가다'

기사입력 : 2017-09-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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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의 경제사상 시리즈 중상주의와 태양왕 루이 14세. 사진은 유럽중앙은행 드라기 마리오 총재.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경와우TV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해설위원을 역임했다.(전화 010 2500 2230)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대학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짐이 곧 국가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절대왕조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루이 14세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각 지역의 영주들이 다스리는 봉건사회였다. 왕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로마 교황청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었다. 자기 영토 내에서도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땅은 영주들에게 봉토로 나누어 주었다. 실제적인 통치는 영주들에게 맡겼다. 왕은 필요할 때 그 영주로부터 군사를 차출하는 정도였다.

영국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아서왕 전설에서도 원탁의 기사들이 왕에게 절대 복종하지 않고 대들거나 맞장을 뜨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원탁이라는 것이 시작과 끝이나 위와 아래가 없는 평등의 상징이다. 이처럼 중세는 절대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분권의 세상이었다.

1562년 프랑스에 전쟁이 터졌다. 구교와 신교 사이의 이른바 위그노 종교전쟁이었다. 그 싸움은 1598년까지 무려 36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이어졌다. 전쟁을 치르면서 프랑스는 힘이 센 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으로 변해갔다.

그 싸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이는 신교도 위그노의 지도자 앙리 4세였다. 그는 닥치는 대로 정복해 나갔다. 허울뿐이던 발루아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새 왕조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루이14세는 부르봉 왕조를 만든 앙리4세의 손자이다. 루이 14세는 이른바 자연국경설을 들고 나왔다. 모든 국경은 신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피레네 산맥, 서남쪽의 알프스 산맥, 북동쪽의 라인 강 등을 국경으로 간주하고 그 안을 무력으로 하나씩 통일해나갔다.

정복사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었다. 누가 군인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입히느냐, 또 누가 보다 더 좋은 무기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라졌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금과 은이었다. 국제통화결제시스템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국경을 넘어 통용될 수 있는 화폐가 금과 은뿐이었다. 결국 금과 은을 많이 확보하는 측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절대군주가 되려는 자에게는 금과 은이 반드시 필요했다. 금과 은이 없이는 군인에게 봉급을 주거나 무기와 장비를 살 수 없었다.

금과 은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금광을 발견하는 것은 천운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웃나라나 신대륙을 침범하여 빼앗아 오는 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이용 가능한 방법은 아니었다. 절대군주들에게는 지속적으로 또 안정적으로 금과 은을 확보할 수 있었다.

루이14세에게는 콜베르라는 천재 재상이 있었다. 콜베르는 1619년 프랑스 랭스에서 태어났다. 상인 가정에서 자란 콜베르는 어려서부터 이재에 통달하고 있었다.

콜베르는 금과 은을 확보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그 첫째는 국내로 유입되는 금과 은의 양이 국외로 유출되는 금과 은의 양보다 많도록 하는 것이다. 콜베르는 이를 위해 수출은 장려하고 수입은 억제했다. 수출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보조금을 마구 풀었다. 반면 수입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겼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입 금지 조치를 발동하기도 한다. 물론 수출을 지원하고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국가를 압도할 힘이 있어야 한다. 무력으로 정벌하거나 위협하여 통상압력을 가했다.

콜베르가 국가의 금 보유를 늘리기 위해 동원한 두 번째 방법은 국내에 유입된 모든 금을 왕의 금고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허가 제도를 시행했다. 누구든지 영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왕으로부터 면허를 얻어야 한다. 면허의 대가는 금이다. 면허장사로 시중의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루이 14세는 콜베르가 마련해 주는 금과 은으로 이웃 나라들을 계속 쳐들어갔다. 다른 나라를 장악한 다음 그 나라의 시장을 개방시켜 강제로 물건을 팔고 그 대가로 금과 은을 모은다. 프랑스의 시장 문호는 그 상대방에게 절대 개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상주의이다. 중상주의란 말은 훗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면서 부르봉 왕조의 일방적인 무역정책을 비꼬면서 만든 것이다. 금과 은으로 전쟁에서 이기고 일단 전쟁에서 이기면 강제 개방으로 금과 은을 빼앗고 또 그 금과 은으로 다른 지역으로 쳐들어가는 중상주의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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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의 경제사상 특집, 중상주의...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경와우TV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금융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해설위원을 역임했다.(전화 010 2500 2230)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대학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중상주의를 통해 프랑스군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콜베르의 금과 은은 프랑스 군대를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이 강력한 군대로 프랑스는 네덜란드까지 진격하였다. 식민지 문제로 영국과 세력 다툼을 벌여 100년 동안 싸우게 되는 영불 백년전쟁도 루이 14세 때 터졌다.

부르봉 왕조의 중상주의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영국과 독일 스페인 등은 처음에 프랑스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중상주의로 무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중상주의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루이 14세는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에 새로운 궁정을 짓기 시작한다. 착공한 지 20년 후인 1682년 왕궁과 정부를 모두 베르사유로 옮겼다. 그때부터 베르사유 궁전에는 프랑스의 대귀족들이 전부 이주해 와서 살게 됐다. 루이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는 바로 이러한 중상주의를 통해 나온 것이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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