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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빈티지 제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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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빈티지 제품화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포도주 소믈리에가 포도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잠시 후 “이것은 19xx년도산 어느 과수원에서 생산된 포도주입니다”하고 말한다. 모두가 놀라며 어떻게 몇 년도 산 포도주인지 알까! 궁금해 한다. 하지만 소믈리에가 매해 포도주 맛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가뭄과 같은 특별한 기후가 50년 만에 찾아 왔다든가, 올해의 폭염처럼 100년만의 가뭄이었다든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폭염이나 가뭄이 든 해의 포도는 유난히 당도가 높아서 포도주를 만들 때 알코올 농도가 풍부하고 아울러 발효과정에서 다양한 향기를 창출해 내기 때문에 소믈리에가 그런 특성을 기억하고 연도를 맞추는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온 말이 빈티지(Vintage)다.

포도주에서 특정한 해의 기후 조건에 따라 명품에 가까운 포도주가 생산되는 경우 연도를 표시하여 최고급 포도주임을 자부하고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사실 포도주 이외에는 거의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감히 초콜릿에 이런 빈티지를 적용하여 2015년도, 2016년도, 2017년도산 초콜릿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초콜릿을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카카오버터 콩은 원산지에 따라 차이가 나고 또 기후 조건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감히 연도에 따른 특성을 소비자들에게 제시하여 공급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산지에서 발효시킨 카카오 버터 콩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원료를 수입하는 과정에서의 변화보다는 훨씬 좋은 상태에서 발효를 시키는 방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몇 년도산 초콜릿. 이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가. 우리도 감히 이런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고유의 발효 식품인 간장이나 된장 등도 좋은 콩을 원료로 할 때 더 맛난 맛을 가져 온다. 과연 어떤 콩이 좋은 콩이며 어느 해에 생산된 콩이 상대적으로 간장이나 된장을 제조하기에 좋았던 것인가를 추적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몇 년도산 간장으로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빈티지 제품의 가격은 훨씬 고급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다.

간장뿐만 아니라 발효를 거치며 유통기간 중 변화가 적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식초도 있을 수 있고 전통주도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제품들이 많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접근을 해 보지도 못하고 있다. 단순히 몇 년간 숙성한 정도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며 오히려 장기적으로 숙성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바 아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모 업체에서 장기적으로 숙성 시킨 술을 만들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여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성급하게도 2년도 안되어 우리 제품은 언제 출시되느냐, 술맛이 이 정도로는 어렵지 않느냐며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면서 투자를 회수해 가는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빨리 빨리 문화의 한 단면을 본 적이 있다.

빈티지 제품은 오랜 기간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며 미세한 차이를 선별할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맛을 평가하는 감각평가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자코와 같은 기기 분석을 통해 오랜 기간의 맛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구분해 낼 수 있는 기술의 도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 먹어 왔던 제품에 과연 그런 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고 이런 시도들이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