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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거래처가 우리로 낭패를 당하면?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거래처가 우리로 낭패를 당하면?

거래처 생산연쇄 차질 위험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



거래처가 우리로 낭패를 당하면?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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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거래처 몇 군데 물 먹이게 생겼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도네시아 전통 휴가기간인 르바란(Lebaran) 1주일 휴가를 지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가 마주한 상황이었다. 갑자기폭증한 주문량이 문제였다. 우리의 원자재를 받아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완성품을 제조해 전세계로 판매하는 회사들에 보내는 물량이다. 휴가전에 받아 놓은 주문이 제대로 집계가 돼 물량이 넘쳐 대안이 없는 외통수에 걸린 심정이었다.

인도네시아에 H사에 취업한 이성준(가명)씨는 지난달 휴가를 마치고 사무실에인사차 전화를 했다가 일이 터진 것을 알았다. 그는 취업 후 첫 휴가로 인천 집에 다녀갔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선발당시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기소개를 한 기억이새롭다. H사는 '제조기업'의 전형으로 인문대학 전공자의 현지 기업 정착 여부는 필자의 남다른관심사였다.

이씨가 취업한 H사는자르타에서 서쪽으로 10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섬유 원자재를 개발,생산해 공급하며 생산공장은 인도네시아여러 군데 두고 있다. 그는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에서 자카르타 동쪽 반둥(BANDUNG)에 있는반둥공과대학교(ITB)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학교육,기숙사생활 등의 교육관리가 엄격한 곳으로 유명하다. 회사는 인도네시아현지인 2000여 명에 한국인 30여 명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생소한 제조업체라 적지 않게 걱정했지만 한국에서 온 기술자 선배들이 잘 이끌어 주어 순조롭게 적응했다고 한다. 엄격한 반둥공과대학교 생활이 공장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17년5월 연수를 마치고 취업해 1년 동안 생산관리,영업관리 등을 공부하며 적응하던 시기였다. 1주일의 휴가공백 이후에 닥친 상황이 당황스럽기짝인 없는 상황이었다. 주문과 공장 가동을 비교해 보니 1개회사의 물량밖에 안 됐다. 보내야 할 회사는 모두 3곳. 나머지 회사는 원자재 공급부족으로 2000~4000명이 일하는 공장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남은 변수는 그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물량이었다. 제각기 주문을 하는 시점이나 자재 확보 방침 등의 관행이 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 책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걸었다.

"다른 회사들의 물량과 맞물려 자칫 다른 공장이 멈출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들의 생산능력(CAPA)로는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가지고 계신 물량과 1일 소요량을 알려주시면 저희 생산량과공급을 조정해서 모두가 이상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문제가되는 회사들도 이름도 모두 공개하며 협조를 구했다.

다행히 현황을 소상히 알려줬다. 3개사의 상황을 한 표에 집계했다. 그 회사로 보내는 물량을 잘게 나누는 일정 재조정을 했다. 보통 때 같으면 한 번에보낸 물량을 3~4차례 나눠 순차로 보내 라인에 투입되도록 최소 물량에 집중했다. 하나하나씩 1주일 하고 나니 평상 상황으로 안정을 되찾기시작했다.

"그제서야 휴가 때 보충한 에너지를 멋지게 날려보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본사 사장님께도 무사 대처를 보고 드렸다. 일 저지른저에게 되레 '걱정은 되었지만 무난히 잘 했다'며 칭찬해주어서 머쓱 했다"

사건의 발단은 3개사에서 주문을 현지인 영업직원들이 받고 생산관리 직원들과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르바란 휴가로공백이 생긴 것이다. 당사자들은 해결될 때까지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마무리하고 나니 찾아와 "미안합니다"하고 인사했다. 문제가 생겨도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모르쇠하는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것도 그 때야 알았다.

이 사건 이후에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스템을 보완했다. 영업과 생산 간의 정보 흐름 문제점도 짚었다. 관련 회의체도 새롭게정비했다.

더 새삼스러운 것은 인도네시아 현지어 활용이었다. 먼저 온 한국직원들과도 다르게 체계적으로 배운 말이라는 것을 크게 인정받았다. 같은 인도네시아어이지만 일상생활의 언어와 관공서 등 공식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연수생들이 고급 언어를 배운 한국 출신의 첫 비즈니스맨같다고도 했다. 1년밖에 안 된 시점에 크고작은 일들을 경험하고 챙기면서 자신감도 붙어 나갔다. 가끔씩 소식을 주고 받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다른 업무 경험이 소중해졌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경영학이나 IT분야에서 ERP(전사적지원관리시스템)에 대한 공부를 조금하라고 일러 주었다. 전산정보시스템을 도입해 회사에 기여하라고 하니 '예'라는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씨는 난리통을 마무리하고 난 그날 늦은 밤에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한다. 작은 무역업으로 집안을 꾸린 게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 지난 일주일간의 일을 말씀드리며 안부를 묻고서는 큰 숨을 한 번 내쉬었다고 한다. '한 군데 회사라도 차질이 생겼다면?' 아찔함을극복한 안도의 호흡이었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