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레고랜드 사태 1년여를 맞아 연말 금융권 수신경쟁의 재현 등 예금금리가 치솟을 것이라는 공포와 위기설이 엄습했지만 우려했던 상황은 피하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내년 최소 세 차례 금리인하가 예상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 하향 안정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의 'KB스타 정기예금',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 등이 연 3.90%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하나은행의 '하나의 정기예금'(연 3.85%),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연 3.75%)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예금금리를 줄줄이 낮추면서 우려가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년 전 5%가 넘는 고금리로 유치한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연말로 갈수록 은행권 수신경쟁이 과열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의로 경쟁이 완화되는 분위기"라며 "고액 예금을 들려는 고객들에게 좀 기다렸다가 가입하는 것을 추천했는데 오히려 예금금리가 내리면서 항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예금금리가 떨어진 것은 미국 등 주요국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기대감에 시장금리가 내렸기 때문이다. 1년 전 레고랜드 사태 당시에는 주요국 긴축 장기화 우려에 시장금리가 치솟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미숙한 의사결정이 시장에 공포를 불어넣은 탓에 자금경색이 심화됐지만 올해는 시장금리가 내리면서 전반적인 자금조달 환경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은행들은 무리하게 수신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채권시장에서 더 낮은 금리를 주고 자금조달이 가능해졌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은행채 1년물 금리(무보증·AAA·민평 3사 평균)는 지난 10월 26일 4.151%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초 3%대에 진입한 뒤 14일 기준 3.728%까지 내렸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해 12월 중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최고 4.758%를 기록했는데 이 당시 보다 금리가 1%포인트(p) 넘게 낮다.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해제도 예금금리를 끌어내리는데 주효했다. 금융당국은 11월부터 은행권의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했는데 은행들은 필요한 자금을 예금금리보다 낮게 은행채를 발행해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수신금리가 내리면서 대출금리도 하향 안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들은 예금과 채권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에 가산금리를 붙여 대출금리를 산정하는 데 조달비용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또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전방위적인 상생 압박을 가하면서 대출금리를 높이기도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가계부채가 최대치를 찍었기 때문에 예금금리가 오르면 고액 자산가들 위주로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면서 "예금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따라 오르기 때문에 예금금리가 낮아지는 게 서민들의 이자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